내 고향 군포시

2021. 5. 28. 09:10나의 이야기

 

수필

내 고향 군포시

堂井 김장수

 

내 고향 군포시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한국이 겪어온 풍파 속에서도,

코로나 19 가운데도 군포시는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군포시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주님께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군포시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군포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리산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매일매일 익숙한 길인데도 금방 친숙해진다.

어느새 나는 군포 토박이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산본고등학교 뒤의 안양군 묘실에 갔었으나, 그냥 왔다.

수리산에 가본 경험도 있고, 관모봉에도 가 보았다. 산에 올라가면 군포시 전체가 다 보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군포시에 태어나서 경부선을 바라보았는데,

경부선(현 지하철 1호선)과 안산선(현 지하철 4호선)을 보기만 해도,

철도의 맥박이 고동치는 순간들은 잊을 수 없다. 수리산 일대는 지금 도립공원이 되어 있다.

초막골 공원도 나에게는 자랑거리다.

초막골 공원은 원래 수리고등학교 뒤에 있었고, 눈썰매장이 있었으나, 개발되면서 많이 변했다.

옛날의 농사짓는 개울이 아니어서 낯설었지만, ‘진작 개발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공원 부근에는 환경관리소가 있다. 처음 이 건물을 지을 적에, 반대하던 시민들의 광경이 눈에 선하다.

내가 사는 개나리아파트 부근에는 산본IC 밑에 체육공원도 들어섰다.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

삼성마을은 옛날에는 시골이었으나, 최근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초등학교도 들어섰다.

도마교동이나 부곡동도 마찬가지로 시골이었으나, 도마교동에는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부곡동에는 아파트, 도서관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문을 열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니 버스노선도 늘어났다.

초창기에는 마을버스 노선이 1,2,3번 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버스노선이 증가되면서 교통체계도 다양해졌다.

버스뿐만 아니라 전철, 택시, 시외버스도 조금씩 활동범위가 증가하여,

금정역에는 급행열차가 서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GTX 철도도 들어서니,

군포역 중심의 역세권 발전이 금정역으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금정역은 4호선 환승역일 뿐만 아니라, 급행열차도 서게 되었고,

미래에는 GTX-C와 환승센터도 설 계획이라 한다.

미래에는 발전될 군포시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주목된다.

용호마을도 처음에는 시골 마을이었다. 군포2동에 속해 있는 이 마을은 지금 아파트는 물론 학교도 들어섰다.

나는 당정동에서 태어났다. 당정동은 한때 큰 공장들이 즐비하던 동네였다.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 있어서 그런지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동네였다.

나는 당정동 109번지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여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주변에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당정동은 공장들이 즐비한, 중소기업들이 많은 동네가 되었고,

주거 지역은 한세대 부근으로 이전했다.

한세대 부근에는 정원고등학교(현 경기외국어고등학교)가 들어섰던 곳이었고,

교도소 부근 약수터도 나에게 정든 곳이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된 당정동 남쪽은 학교도 들어섰으며, 심지어 지하철역이 한세대 부근에 들어섰다.

여러 곳이 재개발된 후, 내가 알던 곳들이 너무 낯설게 변해 버렸다. 내가 알던 군포시가 아니었다.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리모델링한다 뭐 한다 말들이 많으니, 산본 신도시도 어느새 낡아 버렸다.

영원히 낡지 않을 줄 알았던 보금자리였건만, 자연의 법칙만은 어길 수 없나 보다.

어릴 때 금정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에 문구점과 학원이 많았고, 슈퍼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의 괴롭힘이 심한 시절이었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 얼굴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도 어릴 때 괴롭힘을 당해서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할 겨를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곡란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한 학급당 40여명이었으나, 지금은 전교생이 4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요즘은 저출산이 습관화되어 보니,

저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서글프고 분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체육관이 없었으나, 졸업 후 체육관이 생겼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후 대학에 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인 일자리를 하면서도 군포시에 대한 고마움은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군포시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

군포시는 1989년 출범하여 30여 년 동안 수도권의 중견도시로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이제 군포시는 발전의 길 위에 서 있다.

너무나 달라져버린 내 고향 군포시. 이제 새 출발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GTX-C가 군포시 금정역에 들어서면 군포시는 수도권 교통의 메카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물론 수원역, 서울역, 인천 송도역 이외에도

판교(충남 서천군 판교는 아님), 대곡역, 서원주역, 안동역도 수도권에 편입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서 GTX-C가 개통되면 금정역은 타 철도역에 뒤지지 않는 수도권 교통의 메카가 될 것이고,

수도권 전철역 중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아울러 군포시도 1기 신도시의 하나였던 만큼 군포시의 발전과 인구 증가, 균형적인 정책 창출이 뒤따라온다.

철도 교통뿐만 아니라 버스 교통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군포시의 시외버스는 안양, 의왕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 과천, 서울, 성남, 안산, 시흥, 부천,

나아가 인천국제공항, 평창의 장평, 강릉까지 운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안산터미널에 있는 노선들을 군포시외버스정류소에 정차시키면

군포시에도 시외버스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부지가 좁고 정차하는 데 제한되는 등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이웃인 의왕시는 고천에 시외버스 정류소를 만들고,

안성, 진천, 이천, 덕평. 문막, 원주, 청주, 광주, 대전 등지로 갈 수 있도록 해 두었고,

안양시는 작은 시외버스 터미널과 정류소가 있는데,

군포에도 그나마 시외버스 정류소를 설치해 두었으니 노선들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안산이나 안양, 수원에 갈 필요 없이 시외버스 노선들이 많이 와야

시외버스 노선의 다각화가 빨리 정착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GTX-C 열차나 시외버스나 전철이나 군포시민의 꿈을 싣고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군포시의 발전은 시간문제다.

참, 군포는 환경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환경도시가 된 군포시는 아름다운 도시, 살고 싶은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쓰레기 재활용, 특히 쓰레기통이나 비닐에 담긴 쓰레기 재활용 문제가 시급하다.

분리수거의 소중함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철저한 분리수거가 환경도시 군포를 만들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도 해야 할 일이다. 또, 담배꽁초 소각도 필요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 때문에 불편한 것도 생각해야 한다.

철저한 환경보호 정신은 군포시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포시는 30여년의 세월 동안 시민과 함께했다. 어려운 문제는 함께 풀어나갔고,

힘을 합해 단결하여 역경을 헤쳐 나갔다. 어긋난 부분이 있으면 대화로 풀고,

민주주의에 입각해 시민들이 만족할 만한 정책을 아낌없이 펼쳐 나갔다.

군포시가 함께 공존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덕을 베푸는 그런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고향 군포시가 살 길은 그것이기에.

군포시는 영원하리라. 왜냐면 마음 착한 시민들이 많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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