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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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5(마지막회)
◆통일 한국에서통일 한국에서 그는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장영수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더 많아장영수는 그 후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주는 훈장을 받았다. 훈장 수여식에서는 장영수의 부모님이 와 계셨다.영수 아버지께서는,"참 잘 되었구나. 이제야 성공했구나. 잘 했다. 앞으로도 잘 살아라.""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그래, 이 사람이 네 색시냐?""네.""정말 예쁘구나.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얘가 네 아들이냐?""제 아들입니다. 정욱(貞昱)이라고 지었습니다.""좋은 이름이구나. 애비는 이제 늙었다. 애비는 네가 법관이 되기를 바랐는데…. 이제 소원대로 성공했으니,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라."그 후 통일 한국에서 방직회사 경영을 하며 여생을 보낸 영암(榮巖) 장영수.일본인 마쓰야마 쥰은 그 후..
2024.12.14 -
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4
◆드디어 영광의 금메달그 후로는 2022년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일본에 귀화했다.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장영수는 그 후 마쓰야마 쥰(松山俊)으로 창씨개명을 한다.그후 한국 선수들을 보면 독기가 뿜어져 자신의 일본행을 가져온 한국 국민 앞에서 복수의 라켓을 마음껏 휘둘렀다.특히 장영수는 "요시!" 등 일본식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그렇게 한국 탁구의 기본 관행과 자존심을 여지 없이 짓밟았다.이 경기 이후 한국에서는 장영수에 대해 동정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고,장영수를 짓밟은 한국 사회에 대한 경멸과 혐오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 외국 기업가는 한국 대표에게,"당신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놓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데,그렇게 남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이기적..
2024.12.12 -
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3
◆한국인 선수의 한(恨)(2)영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탁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열중했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탁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대학에 졸업하면 꼭 탁구를 다시 하리라 마음먹었다.중고등학교 때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은 채 전교 1등을 했고, 부모님의 뜻대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탁구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좋은 대학에 가서 취직해야 정상인 한국 사회에 대한 혐오감도 언젠가부터 품고 있었다.평생 그렇게 살았다가는 미칠 것만 같아 눈물 흘리며 울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수 아버지께서는,"영수야, 대학원에 가렴. 미국 대학원에 가서 박사 학위 따도록 하렴."하지만, 영수는 이제 독립하고 싶은 때가 왔다 생각하고 용기 있게 말한다."저는..
2024.12.08 -
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2
◆한국인 선수의 한(恨)(1)2026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한국인 선수 장영수(張永壽).1993년 5월 23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탁구를 잘 했고,초등학교 때부터 탁구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주변에서 소문난 탁구 신동이었다.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부터 각종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했고,심지어 2005 상하이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탁구 천재였다.게다가 서브를 잘 하여 웬만한 중국 선수는 간단히 뛰어넘었다.하지만 선생님들과 부모님에게는 장영수의 금메달이 의문거리였고 골칫거리였다.그 때문에 추천서를 써 주지 않아 2006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탁구 감독님은,"너 공부 못 하는 거 티내냐? 공부나 ..
2024.12.08 -
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1
소설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堂井 김장수 ◆일장기를 단 한국인 선수의 금메달"요시(よし, 일본어로 좋다는 뜻)! 요시!"한 한국인 선수가 이렇게 외쳤다. 한국인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2026 아시안게임에서 탁구 남자 개인 종목에 참가했다. 아시안게임이 열려서 조국 선수들과 붙을 때 쓰는 일본말이다.상대는 한국 선수였다. 다른 경기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높아졌고,일장기를 단 한국인 선수는 득점할 때마다 "요시(よし)!" 라는 일본어 감탄사로 기쁨을 표현했다.결국 금메달은 일장기를 단 한국인 선수에게 돌아갔고, 한국 대표팀은 큰 충격에 빠졌다.그러나 이 두 선수는 한때 같은 팀이었고 한솥밥을 먹으며 훈련했던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팀 동료 사이였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24.12.06 -
어려운 꿈이기에 행복하다 4(마지막회)
창식이는 재활과 훈련에 집중해서 얼마 후 기적적으로 심장을 치료했다. 창식이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그 후 창식이는 대아대학교 축구부를 거쳐 동신 돌핀스에 정식으로 입단한다.처음으로 입단하던 날, 창식이의 부모님은 한없이 기뻐했다.“아빠가 술을 끊고 열심히 산 보람이 있었어. 앞으로 잘 하렴. 창식아, 알겠니?”“엄마도 이제는 한이 없구나. 열심히 하렴.”“이 할미도 이제는 죽어도 아무 원도 없구나. 창식아, 할미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알겠지?”얼마 후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 그 때 창식이는 축구 월급을 모아 엄마의 암 치료를 위해 치료비를 쾌척했고,훗날 창식이는 그 병원에 10억 원을 기부한다. 어느 날 공익 광고 출연 제의 때는,출연료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기부하곤 한 창식..
2024.12.06 -
어려운 꿈이기에 행복하다 3
얼마 후, 창식이는 유림초등학교 축구부에 입단한다. 처음에는 축구공 닦기, 청소, 빨래 등 안 해본 심부름이 없었지만,공부와 축구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코치 선생님 덕분에 축구부의 주전 선수가 될 수 있었다.또한 전교 15등을 했다. 그렇게 동아중학교, 세진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약을 하면서 승승장구하는데,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며 숨을 못 쉬더니, 끝내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다. 의사의 진단 결과는 심장병이었다.의사 선생님의 한 말씀,“창식 군은 다시는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엄마의 한 말씀,“선생님, 우리 창식이, 다시 할 수 있을까요?”“누군가로부터 심장을 기증받아야 다시 할 수 있습니다.”아빠와 엄마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평소 의지가 강한 창식이였기에 근처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며창식이의 재활..
202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