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피날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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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피날레 13
해외여행그후 30년이 흘러 유림(裕林) 장세절은 58세가 되었다.희선이의 슬하에 5남 3녀를 둔 유림 장세절은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일본에서 쇼핑도 하고, 훈장도 받고,라멘도 먹고, 재일 동포도 지원하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고, 회고록도 쓰기 시작했다.그렇게 쓴 회고록의 이름은 《사랑 받고 사랑 주고》였다. 이 회고록에서 장세절은 이렇게 밝혔다.“나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주기 위해 매사에 조심하며 살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정말 기뻤다.마라톤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력과 인내력, 정신력이 없이는 하기 힘든 것이 마라톤이다.난 상관없지만 후배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나는 마라톤 경기를 할 때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그 후 장세..
2024.10.19 -
피의 피날레 12
제자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그 후 장세절은 미국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고, 어느 실업팀의 감독이 되었다. 제자들 중에는 장세절 팬들이 많았는데,그들이 직접 장세절을 만났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덕분에 열심히 훈련에 열중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원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장세절은 직접 상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우리 마라톤 팀을 지원해 주십시오. 되는 만큼만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선수들에게 할 말이 생깁니다.”그래서 가까스로 만족스러운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얼마 후 2028 올림픽이 열렸다.제자 중 이창원(李昌源)의 금메달 획득은 큰 성공이었다.깜짝 놀란 장세절 감독과 실업팀 사장은 훈련비를 올려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이행되었다.그 후 ..
2024.10.18 -
피의 피날레 11
훈장 수여, 그리고 감독 취임장세절은 귀국 후 체육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훈장과 금메달을 부모님과 할머니께 보여 드리면서,“이제 효도할게요. 정말이지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정말 고맙다, 세절아! 네가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구나!”“걱정마라. 이 할미가 맛있는 거 해줄게. 기다려. 알았지?”“네 할아버지께서 이걸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야.”고향집에서 큰 환영을 받은 장세절은 마을에서도 큰 환영과 박수를 받았다.“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큰 경사네.”“세절이가 우리 마을을 빛내 주었어요.”“세절이가 해낼 줄 알았어!”곧바로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세절이네 가족들도 모두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희선이는 결혼반지를 세절이한테 받았고, 그 자리에서 세절이에게,“우리, ..
2024.10.18 -
피의 피날레 10
영광의 금메달장세절은 2024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 참가하여 열심히 뛰었다.일본, 에티오피아, 케냐, 남수단,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세절은,‘포기하지 말자.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은가.’하며 의지를 굳게 다졌다. 이윽고 달리기 준비가 끝나고, 총성이 울렸다.장세절은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는 어느 위인의 말을 간직하며 천천히 달렸으며,중간 중간에 물을 머리에 끼얹기도 하며 쉬지 않고 달렸다. 앞쪽의 선수가 지치는 기색이 역력하자,장세절은 힘을 내어 마침내 앞쪽의 선수와 맨 앞에 달리던 선수를 가까스로 제쳤다.그리고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선 장세절은 조국을 생각하며 열심히, 그리고 빨리 뛰었다.그렇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장세절은 시상대 앞에서 애국가를 ..
2024.10.18 -
피의 피날레 9
체육대학 졸업, 그리고 슬럼프 세절이는 그 후 체육대학에 교비생으로 입학했다.세절이는 대학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어 육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하지만 세절이도 슬럼프는 피할 수 없었다. “세절이는 더 노력해야겠어.” 이 말에 상처를 받은 세절이는 혼자 운동에 전념했다. 그 와중에도 의심스러운 약은 먹지 않았다.주변 사람들은 아파도 약도 마음 놓고 못 먹고 있는 세절이가 안타까워 은퇴를 권유했지만, 장세절은 그럴 수 없었다.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울기도 했지만,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용기를 내어 성공하자는 의지를 굳게 다졌다. 훗날 장세절은 이렇게 회상했다. “만일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았다면 내 일생은 망가졌을 것이다.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왔..
2024.10.18 -
피의 피날레 8
세광이의 일생동생 세광이는 2003년 12월 4일에 태어났다. 호는 경촌(耕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형과 사이좋게 지냈고,그 우애는 죽는 날까지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까지는 집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도시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대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여 결혼을 했다. 그 후로는 혜산으로 가서 사업가가 되었다.장세광은 혜산에서 생수 회사, 철도 회사, 건설 회사 등을 경영하면서도 혜산의 동계 올림픽 유치에도 크게 공헌했다.그 후 경촌 장세광은 노벨 평화상에 올림픽 훈장도 받았다. 2096년 3월 4일 별세하면서도끝까지 형에 대한 우애를 잊지 않았다. 슬하에 딸 영숙이와 아들 진암(眞庵) 장효선(張孝瑄)이 있다.
2024.10.14 -
피의 피날레 7
중고등학교 시절중학교 육상부에서 마라톤을 배우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세절이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면서도세절이가 마라톤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동생 세광이도 모범생으로 살면서도형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응원 덕분에 전국소년체전에서는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고,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노력을 열심히 하여 마라톤 금메달을 땄다.그래서 체육대에서 교비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행운도 누리게 되었다.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