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공로

2012. 3. 18. 01:16Dynamic Korea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옛날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현재에만 집착하며

자기밖에 모른 채 살고 있다.

그들이 5, 60년대 어르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알 리 없다.

국민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은

지난날 어르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건 명백한 원칙이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5·16 군사혁명 이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이들을 인정하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 이같은 상황이

되풀이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고 들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였다.

중수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 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그 당시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우리나라와 같이 분단된 - 지금은 통일되었지만 - 공산국가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고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천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이 많은 돈을 어떻게 빌렸을까?

 

당시 우리나라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지금 그 파독 간호사들은 지금도 독일에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파독광부 5백명을 파견하는데

무려 4만 6천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많았다고 한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들의 열정은 이 나라가 잘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러 온

김포국제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 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시신을 닦다니….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 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 종일 그랬다고 하니,

저들의 애국심이 대단하지 않은가?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나 넘는 그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나도 못할 일을 한국인들이 해내다니…, 나는 애국을 할 자격이 부족한가 보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을 캤다고 하니, 굉장한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서독 방송, 신문들은 정말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붙여진 별명은

'코리안 엔젤(Korean Angel)'이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도 할 수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고 한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에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을 안 그들은

5백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이들은 목이 메어서

애국가조차 제대로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 조국이 그리우면 그렇게 되는 걸까?

여러분도 한번 생각을 해 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그런데, 단지 자기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땅 속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자기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계속 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을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를 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박 대통령은 더 참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대통령이라는 귀한 신분도 잊고…

 

박 대통령이 소리내어 눈물을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 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고 한다.

과연 집념의 한국인은 다르다.

요즘 한국인 하는 꼴이

70년대 남베트남과 닮아서 걱정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이러다가 모두 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면 어떻게 하나?

 

육영수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면서,

'조금만 참으세요'를 반복하시는 거다.

참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리를 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하면서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줄 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힘주어 말씀하시는 거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이 말을 반복하시는 거다.

나도 이 장면에 공감이 간다.

오죽했으면 이러셨을까?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UN에 등록되어 있는 나라는 120여개 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나우루 3만여 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던 것이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이루기 위해 단군으로부터

무려 4,30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당시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머리카락을 잘라다가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를 반복하며

길게 땋아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팔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의 학비를 보태주려고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크게 발전하였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고,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전국에 쥐 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다가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건 뭐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러저러 해서 1965년에는

수출 1억 달러를 완성했다. 세계가 경악했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하다니!'

이것은 바로 '한강의 기적'이었다.

전 세계가 경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더한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복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전태일 사건 같은 후유증이 있었지만)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찬란히 빛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광부들, 간호사들, 월남 참전용사들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1988 서울 올림픽,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다가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나아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그 무서운 저력으로 한국이 발전한 이유는

그들 덕분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여러분이 명심할 점이 하나 있다.

파독 간호사, 파독 광부들, 그리고 우리 국군장병들,

중동의 숨은 공로자들(5,60대)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이 세운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욕하고 폄하한다는 것은

을사오적보다 더한 매국이다.

 

전쟁 없는 세상과, 평화, 그건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자유와 자기 결정력, 그리고 상생과 우정의 정신이다.

고구려의 정신과 화랑도 정신은 금상첨화다.

이제 세계는 변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를 직시할 때가 되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조금만 참는다면 국민소득 4만불 시대는 금방이다.

나도 대한민국을 영원히 떠나고 싶었으나,

그냥 떠나기에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이 너무 아까워

지금까지 참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해야 한다.

갈 길이 너무도 멀다.

이제, 다시 뭉쳐서 다시 시작해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어르신을,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또한 후배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서로 베풀고 이해하면서

위대한 대한민국의 천하통일의 대업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늘이여,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번영을 허락하소서.

괴로움 뒤에 여명 오는 것,

대한민국에 무궁한 축복을!

 

P.S.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이제라도 탈북자와 조선족들을 도와주어서

저들이 한국의 일꾼이 되게 하자.

하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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