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9. 11:07ㆍ소설 모음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쇼트트랙 스케이트를 신고
전국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또한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곤 했다.
하지만 소속팀이 해체되어 훈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시 관계자에게 전화하여 소속팀을 해체시킨 이유를 물었더니,
“조상순 님에게 훈련비가 4백만 원이 넘어요. 4백만 원이면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을 두세 명쯤은 도울 수 있어요.
우리 시장님이 못 말리는 인권운동가인건 아시잖아요? 조상순님이 이해해 주세요.”
기가 막혔다. 이게 금메달을 따온 나에게 대하는 태도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화가 나서 부모님께 알렸더니,
‘그만두던지, 대한민국을 떠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결국 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주위의 설득에 시달렸다. 목사님이 한 말씀,
“상순아, 이제 운동 따위 포기하렴. 너한테 들어간 운동비가 5천만 원이야. 상순아, 그 돈으로 개척교회 하나만 짓자.
그러면 하나님이 너한테 복을 주실 거야.”
어떤 아줌마의 말씀,
“운동 그만 두고 취직해야지!”
아버지의 말씀,
“그만둬! 너도 이제는 부모의 생계를 책임질 때가 되었어!”
선생님의 말씀,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야. 평생 쇼트트랙 운동에 주저앉을 수가 없잖아. 도와줄게.
너도 이제는 대학에 가서 취직해야지. 응?”
어떤 시청 관계자의 말씀,
“훈련 포기해 주신다면 취직 일자리 보장해 드릴게요.”
나는 고민했다.
‘그 동안 흘린 땀방울의 보람도 없이 취업 문턱을 기웃거리며 살아야 하나?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 동안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 텐데 그래도 좋단 말인가? 그래, 공부와 취직이 다란 말인가?’
나는 울었다. 취직 이외에 다른 길을 갈 의지도 없는 나라에서 살기 싫었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러시아로 떠나자고.
이민 전 기자회견에서 나는 분명히 밝혔다.
저는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쇼트트랙이 하고 싶었고,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효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이 소속팀을 멋대로 해체시켰습니다. 저는 운동이 하고 싶었지만,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출전기회를 여러분이 박탈했습니다. 선수 훈련비용으로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다고요?
정말이지 여러분께 절망했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저주스럽습니다.
저는 쇼트트랙을 계속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납니다. 저는 더 이상은 이 나라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젊은이에게 출세와 입신양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노예처럼 살기는 싫습니다.
국민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돈밖에 모르고, 취직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취직 이외의 출세의 길을 찾으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나라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절망해서 러시아로 떠납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 살지 않을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어떤 기자의 한 마디,
“그럼 취직이나 이민 중 이민을 택하신 것 같은데, 조상순 씨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영원히 등질 겁니까?”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들이 만든 굴레에 얽매여 평생을 대한민국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러면 대한민국에 살 생각이 없겠군요?”
“그럼요, 취직에 얽매여 저들의 기분 맞춰주는 것도 싫습니다.
또한 저는 더 이상 한국에서 월급쟁이로 살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국민성이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민족이니까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곳곳에서 야유가 터진다.
“대한민국에서 꺼져라!”
“너 이따위로 살라고 네 부모가 대학 보내고 공부시켰냐?”
“대한민국에서 알바 할 생각은 안 하고 그 따위 생각이나 하고 자빠졌냐!”
그 말에 내가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다.
“그럼 너희는 남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이 지랄이냐!”
그 순간, 곳곳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나는 절망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고,
저들에게 발전의 기회가 없나 보다 하고 말이다. 분을 참지 못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사방에서 험한 욕이 튀어나오는 곳을 빠져나갔을 때, 시장님이 내 앞에 서 계셨다. 깜짝 놀랐다.
“조상순, 너 자꾸 이따위로 할래?”
“시장님이 웬일이세요?”
“네가 뭔데 우리 시 이미지를 훼손하는 거야? 그렇게 쇼트트랙이 하고 싶었냐!”
이러면서 시장님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한 마디,
“제가 훈련도 못하는 거 보니 후련하시죠? 이제 저는 대한민국…”
이 말을 하기 전에 진수의 따귀가 철썩 하고 나의 뺨을 갈기는 것이었다.
“여기가 네 놀이터야?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남들과 똑같이 살아! 그게 싫으면 어디로든 꺼져! 이 또라이 새끼야!”
화가 나서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면서 작별의 말을 던진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싫어졌습니다. 다른 나라 가서도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안녕, 대한민국!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증오와 분노의 눈초리를 뒤로 하고 집에 가 보니, 부모님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왜 왔냐? 또 한국 욕먹일려고 왔냐? 대한민국에서 사라져! 당장!”
“짐 싸줄 테니까 이제 이 집에 올 생각도 하지 마!”
나는 서러움과 슬픔을 무릅쓰고 이삿짐을 꾸렸다.
‘다시는 이 집에 올 수 없겠지.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짐을 꾸렸다. 정든 동네를 떠나 낯선 타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울면서 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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