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조국 6

2024. 2. 3. 14:31소설 모음

그 후 수석(水石) 김영수는 2016년에 싱가포르 시민권을 얻었다. 반듯한 직장도 갖고, 어느새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이외에도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타밀어, 아랍어 등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귀국하려 해도 다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 아니, 갈 겨를도 없었다. -

부모님의 부고, 세레나 수녀님의 선종(善終), 그러한 일이 있어도 갈 수 없었다. 바빴기 때문이었다. 영수는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수석 김영수(영문명 피터 영수 김). 그는 대한민국 땅에서 불행했어도 싱가포르에 이민 와서는 행복을 찾았다.

폴란드계 싱가포르인과 결혼하여 32녀를 두었다. 장녀 김경희 헬렌은 인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약했고,

차녀 김미희 수잔은 도쿄대학을 졸업했다. 장남 김용승 필립은 희귀병 연구를 하는 의사가 되어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고, 차남 김용만 펠릭스는 주 독일 대사를 지냈다.

3남 김용섭 사이먼은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아 전 세계에서 문명을 떨쳤다.

수석 김영수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웠다. 2051년 한국에 왔을 때, 수석 김영수는 폴란드인 아내를 데리고 왔다.

자녀들은 바쁜 상태였다. 폴란드인 아내에게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1. 남북이 통일되었다.

2. 북한에도 개발의 바람이 일었다.

3. 인구가 줄었다.

4. 각지에 아파트가 세워졌다.

5. 친환경 에너지가 많이 사용되었다.

6.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이미 죽고 없었다.

7. 수석 김영수 자신도 노인이 되었다.

8. 자신이 살던 고향집은 이미 철거되어 새 아파트가 조성되어 있었다.

9. 한국 문화재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10.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11. 고속철도가 북한까지 연장되었다.

12. 친환경 발전소가 북한에 들어섰다.

13. 남북한 사람들이 사이좋은 형제처럼 하나가 되었다.

 

수석 김영수. 그는 싱가포르에서 순자산 811억 달러의 부자가 되었고,

친환경 사업을 발전시켜 싱가포르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영수는 한국에 갈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김영수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내 마지막 조국은 대한민국만한 나라가 없지. 어쩌면, 오늘의 내가 있은 건 세레나 수녀님 덕분이지.”

영수는 부모님 산소나 가톨릭 공동묘지 방문을 끝으로 대한민국을 떠났다.

마지막 조국을 그리며 떠난 그이기에 후회는 없었다. 수석 김영수.

그는 이제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을 오가며 한국의 발전과 싱가포르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만일 이대로 한국에서 살았다면 고통 속에서 평생을 보냈을지도 모르니까.

수석 김영수. 이제는 그는 싱가포르 사람이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훈장도 받고,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국민훈장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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