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5. 09:18ㆍ소설 모음
그 후 네덜란드로 간 영미. 그 나라에서 대학 하키 팀에 입단했다.
그렇게 영미는 하키에 대한 자신의 꿈을 다시금 펼칠 수 있었으나, 그 대가로 한국 국적을 박탈당했으며,
한국 입국도 금지되었다. 얼마 후에는 네덜란드 국적으로 동메달을 땄으며,
석 달 후에는 네덜란드 교포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두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가시둥지를 벗어나 상처를 딛고 다시 재기한 것이었다. 결혼 후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영미는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도저히 한 개인이 작은 꿈을 꿀 수조차 없는 저주받은 사회다. 나는 그 가시둥지에서 벗어나 기쁘지만,
나의 동료들은 지금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영혼마저 파괴당하고 마멸되어 가고 있다.”
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학교폭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5세가 된 영미.
손자 줄 선물을 사러 가는 도중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다.
병원에 가 보니 장 감독한테 심하게 맞아 곳곳의 뼈가 가루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뇌출혈에 심근경색이 겹쳤다.
그렇게 수술을 했으나, 수술 도중 숨을 거둔 영미. 향년 56세였다.
네덜란드 하키연맹은 영미에게 명예로운 상을 추서했으며,
대한민국 하키연맹은 40년 동안 사실상 해체되었다가 40년 후 재건되었다.
한편, 영미의 유서가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한국 땅에 묻히기 싫습니다. 나의 유골을 화장하여 암스테르담 항구에 뿌려 주십시오.
진영미는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대한민국의 사슬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것이다.
더 이상 폭력이 없는 나라에서, 더 이상 미운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없는 천국에서.
그 후 진영미의 유골은 화장되어 암스테르담 항구에 뿌려졌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영미는 그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하키에 대한 자유를 영미는 천국에서 마음껏 누릴 것이다.
비참한 비극을 맞게 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