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11:06ㆍ현석이의 행복
100세 이후
102세의 나이까지 농사꾼으로 활동한 현석. 하지만 그도 자연의 법칙만은 어길 수 없어 흰머리가 늘었다.
장남 선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환경운동과 남극 보호운동, 북극곰 보호운동에서 활동했고,
차남 선길은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돌아다니며 대사직을 역임했고,
막내딸 선미는 환경운동가인 남편을 따라 북마리아나제도에 가서 활약했다.
그렇게 자식들이 환경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여 흡족한 현석. 말년에는 가평의 어느 교회에 등록한 그는
기도로 나날을 보내다가, 위암으로 끝내 쓰러졌다. 2122년 4월 15일,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모두 수고했다. 나는 너희 세 명의 어머니와 너희 조부모님 곁으로 간다.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고,
유산은 모두 기부하도록 해라. 나는 천국에서 너희들을 지켜보겠다. 천국에서 만나자. 꼭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
이 말을 남기고 성재 장현석은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9세. 유골은 화장되어 서울 가평군 뒷산에 묻혔다.
훈장이 추서되었고, 장현석 가문은 환경 가문으로 크게 활약하며 현석이 죽은 후 2130년에
‘성재 장현석 지구 환경 돌보기 운동’이 창설되었다. 이 운동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지구 환경과 오존층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성재 장현석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어느덧 2134년에 이 운동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운동이 헛되지 않아 세계 환경에 큰 영향을 가져온 것이다.
성재 장현석은 가평군 뒷산에 묻힌 채로 가평 땅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생전에 노력한 결과 아니던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환경 분야에서 후회 없는 활약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우리 모두 사랑하며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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