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려인의 비애

2016. 7. 17. 23:39나의 이야기

소설

어느 고려인의 고백

                堂井 김장수


내 이름은 등촌(藤村) 조상순. 나는 지금 러시아 고려인이며, 소치에서 살고 있다.

소치는 비록 휴양도시지만, 이래뵈도 2014년 동계 올림픽을 치른 곳이다.

비록 러시아의 최남단 도시이지만, 사계절 내내 따뜻한 기후에다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2018년 월드컵도 소치에서도 열렸고, 풍부한 먹을거리, 온순한 공기,

정말로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싶어 하는 살기 좋은 도시이다. 이제 나는 고려인이다. 러시아 사람이란 말이다.

이제 나의 러시아식 이름은 로베르트 조이다. 나는 다시는 한국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했고, 언어로는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를 동시에 쓸 수 있다. 내 나이 쉰셋인데,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지금 나는 쇼트트랙 코치로 일하고 있는데,

한국 어린이들보다 행복한 러시아 어린이들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조국의 어린이들은 저주받은 상태이고,

철저히 부조리, 부정부패, 이기주의, 저성장 경제 고착화, 정치의 해이, 갈등, 열등감, 폭력, 실패 등을 즐기며,

개선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술과 돈과 권력에 걸신 든 한국의 풍토에 실망하여 떠나버린 나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계속 그렇게 살다가 망할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철저히 개인주의를 즐겨대는 저들에게 세계인은 '헬조선'이라 부른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발전과 희망 같은 건 없고.

돈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콧대만 세서 결국 국민의 손에,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까지

흉탄에 돌아가셨으니, 더는 미련 따위 두지 않기로 했다. 그 때문에 고려인들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되도록 가지 않는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동포들이 나에게 험한 욕설을 내뱉을까봐 두려워서이다. 나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는지

그들 곁에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안 가는 것이 나은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조국.

내가 바라던 내 조국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서른둘에 결혼하여 3남매를 낳았다.

장녀 카타리나는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차녀 엘레나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은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아들 요한은 소치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다. 지금 나는 러시아의 교육제도에 만족한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정말 절망이다.

철저히 입시나 대학에 집중되어 있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편애하며,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노예'이다.

'스펙'이라는 제도는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취업 공화국'으로 만들어 서민들을 착취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철저한 경제이론과 법을 주입시켜 국민 사이의 분열을 부추기겠다는 것인지,

그것을 고치고 개선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 국민의 도리이자 상식이지만, 끝내 대한민국은 그것조차 거부했다.

지금 한국은 통일되었지만, 갈등과 경제 파탄 등으로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었다. 같은 동포로서 너무 창피하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 한국인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어쩌다가 한국인이 집단으로 정신병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실망했다. 이따금 뉴스에서 한국에 관련된 뉴스를 보면 한없는 절망감에 한숨이 나오곤 한다.

망해가는 내 조국, 저주받은 대한민국. 이제 대한민국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걱정스러우면서도 화가 난다.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나 자신이 싫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쇼트트랙 스케이트를 신고

전국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또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곤 했다.

하지만 소속팀이 해체되어 훈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나는 시 관계자에게 전화하여 소속팀을 해체시킨 이유를 물었더니,

"조상순 님에게 들어간 훈련비가 4백만 원이 넘어요. 4백만 원이면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을 두세 명쯤은 도울 수 있어요.

우리 시장님이 못 말리는 인권운동가인 건 아시잖아요? 조상순 님이 이해해 주세요."

기가 막혔다. 이게 금메달을 따온 나에게 대하는 태도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화가 나서 부모님께 알렸더니, '그만두던지, 대한민국을 떠나라'는 대답이 나왔다.

결국 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주위의 설득에 시달렸다.

목사님이 한 말씀,

"상순아, 이제 운동 따위 포기하렴. 너한테 들어간 운동비가 5천만원이야. 상순아, 그 돈으로 개척교회 하나만 짓자.

그러면 하나님이 너한테 복을 주실 거야."

어떤 아줌마의 말씀,

"운동 그만 두고 취직해야지!"

아버지의 말씀,

"그만둬! 너도 이제는 부모의 생계를 책임질 때가 되었어!"

선생님의 말씀,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야. 평생 쇼트트랙 운동에 주저앉을 수가 없잖아. 도와줄게.

너도 이제는 대학에 가서 취직해야지. 응?"

어떤 시청 관계자의 말씀,

"훈련 포기해 주신다면 취직 일자리 보장해 드릴게요."

나는 고민했다.

'그 동안 흘린 땀방울의 보람도 없이 취업 문턱을 기웃거리며 살아야 하나?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 동안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 텐데 그래도 좋단 말인가? 그래, 공부와 취직이 다란 말인가?'

나는 울었다. 취직 이외에 다른 길을 갈 의지도 없는 나라에서 살기 싫었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러시아로 떠나자고.

이민 전 기자회견에서 나는 분명히 밝혔다.

저는 더 이상 한국에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쇼트트랙이 하고 싶었고,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효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이 소속팀을 멋대로 해체시켰습니다. 저는 운동이 하고 싶었지만,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출전기회를 여러분이 박탈했습니다. 선수 훈련비용으로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디고요?

정말이지 여러분께 절망했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저주스럽습니다. 저는 쇼트트랙을 계속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납니다.

저는 더 이상은 이 나라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젊은이에게 출세와 입신양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노예처럼 살기는 싫습니다. 국민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돈밖에 모르고, 취직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취직 이외의 출세의 길을 찾으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나라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절망해서 러시아로 떠납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 살지 않을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어떤 기자의 한 마디,

"그럼 취직이나 이민 중 이민을 택하신 것 같은데, 조상순 씨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영원히 등질 겁니까?"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들이 만든 굴레에 얽매여 평생을 대한민국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러면 대한민국에 살 생각이 없겠군요?"

"그럼요. 취직에 얽매여 저들의 기분 맞춰주는 것도 싫습니다. 또한 저는 더 이상 한국에서 월급쟁이로 살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국민성이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민족이니까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곳곳에서 야유가 터진다.

"대한민국에서 꺼져라!"

"너 이따위로 살라고 네 부모가 대학 보내고 공부시켰냐?"

"대한민국에서 알바 할 생각은 안 하고 그 따위 생각이나 하고 자빠졌냐!"

그 말에 내가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다.

"그럼 너희는 남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이 지랄이냐!"

그 순간, 곳곳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나는 절망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고,

저들에게 발전의 기회가 없나 보다 하고 말이다. 분을 참지 못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사방에서 험한 욕이 튀어나오는 곳을 빠져나갔을 때, 시장님이 내 앞에 서 계셨다. 깜짝 놀랐다.

"조상순, 너 자꾸 이따위로 할래?"

"시장님이 웬일이세요?"

"네가 뭔데 우리 시 이미지를 훼손하는 거야? 그렇게 쇼트트랙이 하고 싶었냐!"

이러면서 시장님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한 마디,

"제가 훈련도 못하는 거 보니 후련하시죠? 이제 저는 대한민국…"

이 말을 하기 전에 진수의 따귀가 철썩하고 나의 뺨을 갈기는 것이었다.

"여기가 네 놀이터야?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남들과 똑같이 살아! 그게 싫으면 어디로든 꺼져! 이 또라이 새끼야!"

화가 나서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면서 작별의 말을 던진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싫어졌습니다. 다른 나라 가서도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안녕, 대한민국!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증오와 분노의 눈초리를 뒤로 하고 집에 가 보니, 부모님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왜 왔냐? 또 한국 욕목일려고 왔냐? 대한민국에서 사라져! 당장!"

"짐 싸줄 테니까 이제 이 집에 올 생각도 하지 마!"

나는 서러움과 슬픔을 무릅쓰고 이삿짐을 꾸렸다.

'다시는 이 집에 올 수 없겠지.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짐을 꾸렸다. 정든 동네를 떠나 낯선 타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울면서 짐을 정리했다. 다음 날, 이삿짐을 꾸려서 인천공항으로 갈 준비가 되었을 즈음,

담임선생님과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놀란 표정을 지으시고서 말이다.

"상순아, 정말 러시아로 갈 거니? 가게 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돼."

"너 거기 가면 예수님 안 믿을 거잖아?"

나는 한 마디 했다. 작별의 한 마디였다.

"선생님들, 이제는 제 인생은 제가 개척합니다. 러시아로 가서 금메달 많이 따겠습니다.

훈련도 마음 놓고 못 하는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요. 취직을 강요하실 거면 다시는 제게 말도 걸지 마세요!"

"선생님은 네가 취직하는 거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 소원이 깨진 이상, 더는 한국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

후회하지 마라. 떠나게 되면 못 돌아오니까."

"너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가서 마음대로 잘 살아 보거라!"

그렇게 이삿짐을 꾸려 인천공항을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에 발을 붙인 순간, 한국에 없는 알 수 없는 공기가 나를 감쌌다. 러시아어를 배우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어떤 우즈베키스탄 사람의 도움으로 러시아어를 배웠고, 대통령이 러시아 국적 취득 동의서에 서명해 주었다. 고마웠다.

나는 '조상순'에서 '로베르트 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한국 국적은 소멸되었고, 나는 러시아 국적을 얻었다.

그 후 소치에 정착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결과, 내 실력은 조금 늘었다.

어떤 러시아 선수가 나를 격려해 주었을 때, 한국에는 없는 따뜻한 격려에 눈물이 났다. 그 뒤, 대망의 소치 올림픽이 열렸다.

나는 그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 1개의 동메달을 땄다. 그 때 나는 한국에 없는 열렬한 환호를 느꼈다.

나는 울면서 러시어의 국가를 불렀다. 후회는 없다.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었기에. 그 후 나는 결혼을 하였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훈련에 열중했다. 하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국민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나에게는 환영 대신 야유가 빗발쳤다.

"야, 조상순! 대한민국 말아먹고 뭐 하러 왔냐! 네 나라로 가!"

"이제 후련하겠지. 너는 개념도 없니?"

그 야유에도 불구하고 3개의 금메달을 땄지만, 한 번도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나는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야유와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물론 식당에서도, 교회에서도 쫓겨나

눈물로 바깥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바깥에서 도시락을 먹는 중에도 한국인의 험담은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싫다고 떠난 놈이 배짱도 좋다. 너 같은 놈은 금메달을 딸 필요도 없어. 알겠냐?"

이러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러운 감정을 억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내가 평창을 떠나는 날,

"안녕히 계십시오, 대한민국이여. 다시는 돌아올 일 없겠지요."

하고 말하는 그 순간, 신발 한 짝이 나에게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에 대한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다, 이 개새끼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자는 경호원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계속 "개새끼야!"라는 욕설을 내질렀다 하니,

나에게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조국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엉엉 울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하며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서러웠던지 세계 언론이 나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평창 동계 올림픽은 끝나고, 러시아로 귀국한 후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그 편지를 열어 보니,

조상순의 대한민국 국적을 박탈하며, 대한민국 영토 안에 영구히 입국을 금지, 불허한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펑펑 울었다. 사랑했던 조국에서 버림받은 나 자신을 돌아보니

참았던 울음이 둑이 터진 듯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딴 후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소치에서 어린이 쇼트트랙 강사로 일하고,

또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소치에서 아이들에게 쇼트트랙을 가르치는 한편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정부로부터 훈장을 몇 개 받았다. 그 동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적에도 입국이 불허되었다.

불효자식이 어떻게 대한민국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제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나이기에 후회는 없다.

이제 '조상순'은  죽어 잊혀진 지 오래고, '로베르트 조'라는 이름이 나는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러시아식 요리를 먹고, 운동과 유도를 배운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쇼트트랙을 가르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소설과 시를 쓴다. 이렇게 행복한 일과가 나는 좋다. 돌아갈 수조차 없게 된 내 사랑했던 조국 대한민국.

이제 나의 조국은 러시아다. 러시아 소치의 찬란한 햇빛과 아름다운 홍해의 바다,

아름다운 소치의 산들이 나를 축복해 주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이 러시아 소치 주민들에게 가득하기를.

이 소설은 안현수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안현수는 러시아 국적으로 소치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제 그의 새 이름은 '빅토르 안'이다. 나는 내심 그가 부럽지만,

자신의 재능을 잘 펼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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