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의 권투인생 2

2024. 3. 15. 08:54소설 모음

링 밖에서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한 송재 장경일. 하지만 그는 링 위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고,

모범적인 권투선수였다. 또한 링 위에서는 세계 챔피언을 석권하며 복싱 무대를 호령했으며,

링 밖에서는 대한민국 안의 인종차별과 전쟁 반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무하마드 알리가 그랬던가? 나도 그를 우상으로 공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옛날처럼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등을 위해서는 나는 싸울 것이다.

죽고 천국에 가는 날에는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하여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인류는 어떠한 조건 안에도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인간은 하느님이 지어주신 최고의 창작품이다.”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비록 우리 대한민국이 통일되었지만,

나는 갈등과 전쟁을 반대한다. 갈등과 전쟁을 이겨내는 나라는 번영과 행복이 뒤따른다.”

 

“약물 때문에 꿈이 망가진 선수들을 많이 보았다. 약물은 자나 깨나 조심해야 한다.

약물을 먹고 경기력이 오르는 건 그 순간뿐이지만, 그 뒤에는 명예도 지위도 돈도 다 잃는다.

그러니 약을 먹고 싶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경일은 권투신동이었다. 전국체전의 단골손님은 예사고,

20세 때인 2028년 올림픽에서는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가족들은 기뻐했다. 아버지는

“우리 경일이가 금메달을 땄다! 장경일 파이팅!”

이러는 것이었다. 장경일의 출세는 곧 국민들의 기쁨이자 큰 경사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회에서 경일의 금메달은 눈엣가시였고, 언짢은 일이었다.

아무튼 경일이 금메달을 따자 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동네에서는 ‘송재 장경일 상기의 금메달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릴 정도로 큰 환영을 받았지만, 대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경일이 다니던 대학교에서는 정문에 ‘장경일! 공부 좀 해라!’라는 플랜카드와

‘장경일은 민주주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또한 대학 친구들마저도 경일을 보면 경일이 들으란 듯이 험담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했으며,

심지어 대학 교수마저도 취직하자고 설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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