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의 권투인생 4

2024. 3. 18. 07:08소설 모음

어떤 친구는,

“장경일, 다른 사람처럼 취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니?”

또 다른 친구는,

“그깟 금메달이 뭐가 중요하냐? 취업이 중요하지!”

교회 다니는 어떤 청년은,

“너 그렇게 살면 지옥 간다!”

이렇게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교회 권사님은,

“경일이도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 평생 그렇게 살 수 없잖니?”

교회 목사님은,

“그 시간에 성경도 읽고, 말씀도 듣고, 모든 걸 중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자. 응?”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경일아,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내가 원하는 취업, 남들과 똑같은 길,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 도와줄게. 권투 그만두렴. 응? 부탁이야….”

이렇게 말하며 흐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또한 교회 사모님은,

“너 하나님께 순종 안 하면 너 왕따 시킨다! 교회 다닐 사람만 환대해 줄 거야!”

이러는 것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일은 주변에 권투를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돌아온 답은 늘 그랬듯이

“권투 그만두면 취직 특례 보장한다!”

이런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장경일 출입금지’

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고, 폭력배로부터

“장경일, 너 금메달 반납해라. 안 그러면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린다!”

이런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저주받은 대한민국에 환멸을 느낀 경일은 2030년 4월 22일에 남아공으로 떠났다.

그렇게 경일에게 조국의 문은 철저히 닫혀 있었다. 경일은 훗날에

“대한민국을 대표해 금메달을 따냈다고 생각했던 환상이 그때 사라졌다.”

라고 말했다. 그 후 남아공으로 귀화해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경일은 열심히 했다.

현란한 스텝과 뛰어난 반사 신경, 정확한 펀치로 무장한 경일은 프로 무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는 2032년 3월 25일 복싱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미국의 챔피언을 5라운드 TKO승을 거두고 WBA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존 사이먼 경일 장으로 개명했다. 그는 한창 인기를 구사하던 당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의 철학을 인생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일은 한때면 지나갈 인기에 연연할 생각이 없었다.

경일은 당시 남아공 귀화 사실을 알리며,

“나는 한국인 동네로 이사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한국인과 결혼할 생각도 없다.

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이 대서특필되자, 한국 국민들은 장경일을 성토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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