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11:23ㆍ소설 모음
자식들과의 상봉(2)
덕윤 씨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뻤다. 사실 덕윤 씨 3형제는 아버지를 너무나도 보고 싶어했다.
아버지는 46년 전 어머니와 3형제를 떠났다. 하지만 덕윤 씨의 기억에는 아버지는 자주 가족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무사하시어 코로나19를 간신히 면하시니, 덕윤 씨는 너무 기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일을 어머니께 상의했더니,
“죽은 사람 소원 들어준다는데, 한 번 만나보자.”
이러시는 것이었다. 덕윤 씨의 형과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은 기 씨와 3형제의 관계를 돌려놓았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아들들은 가끔 안부 전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저 오가는 형식적인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도 가끔 나왔다.
덕윤 씨는 아버지가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걸 알게 된 뒤 고심 끝에 동생에게 털어놨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우리가 용돈이라도 모아서 보내드리자.”
동생의 반응은 생각보다도 차가웠다.
“글쎄요, 형. 생각해 보고 도와드리죠.”
덕윤 씨는 처음에는 차가웠던 동생에게 화도 났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동생이 두 살 때 떠난 아버지였지만, 힘들 때 꼬옥 안아주신 아버지.
동생에게도 형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정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훗날 덕윤 씨의 회고,
“아버지 없이 커서 삶이 힘들었어요. 세상살이에 지치기도 많이 지쳤고요.
2017년 영등포역 근처에서 얼굴 뵌 게 생전 마지막일 뻔했어요. 누굴 돌볼 여력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효도를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3형제가 효도를 열심히 해서 편히 돌아가셨으니 하늘나라에서도 편안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