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11:26ㆍ소설 모음
고시원에서
홀로 시작한 고시원 생활은 생각보다 더 괴로웠다. 고시원은 그 당시 한마디로 ‘외딴 섬’이었다.
방에서 홀로 누워 있으면 외로움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기 씨는 그럴수록 용기를 냈다.
아침마다 장을 보며 직접 요리를 해먹고, 꼭 세탁소에서 다림질한 셔츠와 정장을 갖춰 입고 외출했다.
고시원 근처 청과물 가게에서 싸게 내놓은 과일을 가끔씩 사와서 고시원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외딴 섬 고시원에서 느끼는 노년의 외로움을 이렇게 달래곤 했다.
“기 선생님이 딸기 같은 걸 잔뜩 가져오셔서 나눠주면 총무나 주민들이 좋아했어요.
고시원에서 신선한 과일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시원에서 지내는 20대 학생들은 아예 기 선생님을 ‘키 큰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꾸벅 인사를 했죠.
총무들도 ‘선생님’ 이러면서 잘 따랐습니다.”(당시 고시원의 강덕민 원장)
“고시원에 오시는 여느 분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순하시고, 점잖으시고, 남한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절대 안 하셨어요.
언젠가 넌지시 자제분 얘기를 꺼내신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왠지 남모를 슬픔과 아픔이 느껴져 자세히 여쭤보진 못했죠.”(당시 고시원의, 함형진 원장)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기 씨는 10년을 보낸 그 고시원을 떠났다.
건물의 재개발 결정으로 모든 주민들이 쫓겨나듯이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찾은 다른 고시원.
살던 곳보다는 낡고 퀴퀴했어도 비슷한 월세에 만족스러웠다.
덕호 씨는 처음 고시원에 들어올 때처럼 추위 속에서 쓸쓸히 무거운 이삿짐을 날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