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2. 08:56ㆍ배구선수 김인석
선생님의 반대
초등학교 4학년 때, 결국 선생님이 인석을 호출하셨다. 선생님은 작심을 했나 보다.
“김인석, 수업 끝나고 남아.”
수업이 끝난 교실. 선생님은 인석에게,
“인석아, 선생님이 원하는 건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버릇 해서 취직하는 거야.
선생님은 네가 배구에 매달려 학업을 소홀히 하는 것이 싫고 안타까웠어. 응? 응?”
“……네.”
그래서 살포시 안아주시는 선생님.
“인석아,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남들처럼 똑같은 길을 가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가서 취직하는,
그런 모습이 보고 싶어. 어머니 장애시니까, 취직해서 정상생활 해버릇 하는……. 제발……. 응?”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인석이도 하기를 바랐지만, 인석은 배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허용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 염증을 느낀 인석. 그래서 선생님의 품을 뿌리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저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 싫어요. 제가 왜 주제와 분수를 알아야 하죠? 저는 배구선수가 꿈이예요. 제발 제 앞길을 막지 마세요!”
끝내 선생님은 울고 만다. 그것을 본 교장선생님.
“정 선생,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인석이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쩌지요? 이제는 다 어그러지고 말았어요……."
그러시고 우시는 담임선생님. 이를 본 교장선생님은,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심보, 정 선생은 고칠 필요가 있어요. 인석이, 따라오렴."
결국 인석을 호출하신다. 교장실에 간 인석.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말씀.
“인석아, 담임선생님이 저러셔도 그냥 그러려니 하렴. 네 꿈은 이해한다. 언제 배구부 학교 알아봐 주마.”
그런 교장선생님이 고마워서 인석은 펑펑 울었다. 인석은 며칠 후 인근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담임선생님은 그런 인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참 잔인하다. 꿈을 응원해 주기는커녕 그 꿈에다 악담을 퍼붓다니 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놀려대던 인석이 꿈을 찾아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인석이 떠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배웅하지도 않았다. 다만 공부삼매경이다.
그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정문을 나서며 학교를 떠난 인석.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는 이 학교에 돌아오지 않겠다.’
이 학교에 상처받은 인석은 그 학교와 미련 없이 절연(絶緣)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전학을 가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장애를 조롱거리로 삼은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겠다는 결단도 함께였다. 얼마 후 전학 수속을 마친 인석은
배구부가 있는 인근 학교에서 공부와 배구를 병행했다. 성적은 상위권인데다 어머니의 처지를 아신 교장선생님이
훈련비를 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인석은 한때나마 행복했다.
그렇게 인석은 훈련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참, 어머니의 다리를 저는 장애는 학교와 친구들, 정부의 도움으로 석 달 만에 완쾌되었다.
덕분에 어머니의 재활을 도우며 공부와 배구를 병행할 수 있었다. 재활 1년, 어머니의 다리는 다 나았고,
인석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 배구부에 입단했다.
코치는 어머니의 사연을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인석에게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셨다. 인석은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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