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선수 김인석 7

2024. 9. 22. 05:20배구선수 김인석

배구선수로 성공하다

우리 인석이가 핀란드에서 돌아온대요.”

2024930, 대림동은 이 소식으로 난리가 났다.

이제 인석은 한국뿐만 아니라 핀란드나 세계에서 유명한 배구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나왔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자 동네의 자랑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인석이 엄마가 좋아하시겠어. 인석이 아버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말을 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한국 남자배구 첫 금메달을 딴 인석이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다.

동네에서는 인석을 어떻게 맞을까 하고 떠들썩했다. 인석이 갑자기 귀국하겠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보내 온 어머니의 사진을 보자, 갑자기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었다.

그 사진은 인석의 친구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인데, 그 사진을 보니, 어머니는 이미 많이 늙으셔서,

이번에 가지 않으면 영영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까봐 걱정되어서 귀국 준비를 한 것이다. 어머니는 다행히 살아계셨지,

당시에는 돌아가실까봐 걱정한 것이다. 104, 인석이 귀국할 때,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대대적인 환영 인파가 몰렸다.

떠날 때는 어머니와 교장선생님, 친구들이 배웅을 해 주었지만,

돌아올 때는 유튜버, 기자, 지인, 시민, 친척들의 열렬한 환영 잔치가 베풀어졌다.

인석은 공항 주변의 호텔에서 이틀 밤을 묵고, 볼일을 마치고 곧바로 공항철도를 타고 고향 대림동으로 갔다.

고향은 이미 재개발되어 새 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 인석이 서울역에서 대림동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고 나서

차에서 내리자, 마을 사람들과 여학생들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고, LED 전등을 단 환영 아치도 세워져 있었다.

김인석 선수 만세! 대한민국 만세!”

오빠, 사인해 주세요!”

만세! 만세!”

그렇게 인석을 환영하는 소리는 가을 하늘을 울렸고, 크게 성공하여 고향을 찾아온 인석은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환영을 하지 않을 줄 알았었지만 크게 환영해 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싱글벙글 웃으시며,

그래, 잘 돌아왔다. 자랑스럽구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석은,

고맙습니다. 이건 교장선생님 덕분입니다.”

인석은 너무 고마워 교장선생님께 절을 올렸다. 길게 두 줄로 늘어선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었고,

하늘에는 때아닌 불꽃놀이가 피어났으며 동네 곳곳에서 태극기가 휘날렸고,

또 고등학교 밴드부가 연주한 <개선 행진곡><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기뻐하는 동네 사람들 속에 파묻힌 인석.

집으로 오는 길에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에 들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가게 일을 끝내고 와서 외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

잘 왔다. 훌륭하구나!”

그렇게 모자간에 눈물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어머니와 아들 인석은 가슴이 벅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로 부여잡은 손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것을 본 이웃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곁에는 경문이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경문이도 감격에 찬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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