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7. 05:33ㆍ소설 모음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결혼
박사 과정이 끝날 무렵에 동혁은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많은 이력서를 보냈고,
인터뷰도 여러 번 했지만 채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용 기술이 아닌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근본적으로 연구하는 동혁의 논문 분야가
최신 트렌드에 맞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는 기업 대신 대학의 박사 후 연구과정을 통해 조금 더 커리어를 쌓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다시 수많은 학교에 지원서를 보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90통 가까이 제출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연락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인터뷰를 몇 군데 했지만 최종 합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학회에서 몇 번 얼굴을 뵈었던 것이 인연의 전부인 동광대 조창세 교수님이 동혁의 이력서를 보고는
MIT의 한 연구실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금의 지도교수님은 본인이 박사과정이 다뤘던 원론적인 주제를 최신 트렌드에 접목해
응용하는 연구를 하시는 분이었다. 동혁의 석·박사 논문 역시 실용기술의 근간이 되는 근본적인 연구였는데
그 가치를 알아봐 준 곳이 MIT였다는 것이 동혁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2024년에 동혁은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혁의 동기들은 모두 군 제대 후 취직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취준생으로 사는 동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혁은 그들보다 큰 출세를 했기에 기뻤다. 장형윤 교수님이 축하를 해 주었다.
“정 박사, 축하하네!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어!”
“장 교수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과학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자네 MIT에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면서? 정말 축하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동혁은 원래 군 장학생으로 직업군인이 될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어릴 적의 꿈이 있었기에
과학자를 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세아대학교와 KAIST를 거치는 동안
수석의 성적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공부에 재미를 두었고,
얼마 후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어느덧 영어와 중국어, 독일어에도 재미를 느껴 심지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졸업 후에는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KAIST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은, 졸업 후 같이 연구하던 여자 연구원 김문희와 결혼식을 치렀다.
김문희의 나이는 28세. 동혁보다 4살 아래였다. 주례는 동광대 조창세 교수님이 서 주셨다.
함께 참석해 온 장형윤 교수님과 친척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
심지어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과 직원들이 참석해 주었다. 동혁은 이제 결혼하여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