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 21:43ㆍ어느 영재가 조국을 떠나기까지
잘못된 ‘영재’의 길
나는 한때 ‘영재’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영재 판정을 받은 2019년,
초등학교 3학년 순간부터 몇 년간 쭉 그랬다. 호기심 삼아서 몇 가지 시험을 보았다가 영재가 되었다.
부모님은 영재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주변에서는 명문대 진학을 보장받았다고 부러워하셨다.
나는 그것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중학교 때까지 ‘영재학급’에서 1주일에 3~4시간씩
다른 수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암호를 해석하고, 화학, 물리학, 수학,
생리의학에도 실력이 있었다. 복잡한 암호를 풀어내고 수학 문제를 쉽게 풀어낼 때의 그 성취감,
그건 학교에서 수학시험을 잘 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영재 학생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한다는 경로를 따라가지 않은 건 돌이켜 보면 잘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교육청이 운영하는 영재 교육반에 들어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툭하면 담임은
“영재가 이런 것도 모르니?”
라고 타박할 때마다 숨이 막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완벽해야 한다,
하나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 이딴 얘기를 들을 때마다 숨이 더 막혔다.
견디다 못해 부모님께 왜 내가 영재로 살아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대화는 끝이다. 명문대 들어가서 얘기하자!”
라고 딱 잘라 말했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어쩌다 시험 중에 10문제 중 1문제라도 못 맞히면 주위에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나는 분명히 노벨상이 꿈인데,
한국에서는 모든 과목을 다 잘 해야 한다는 이기적 망상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모른 채,
그저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는 이기주의자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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