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피해자 45(마지막회)

2024. 6. 9. 07:58사회의 피해자

여생을 보람 있게

태홍은 그 후 핏케언 섬에서 환경 보호 연구를 하며 지냈다. 어느덧 할머니는 111, 아버지는 109,

어머니는 120세를 장수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아내는 102세를 향수했다. 태홍도 많이 늙었다.

그의 두 아들도, 영석도 태영도 늙었다. 이제 핏케언 섬은 아이들이 많아진 섬이 되어, 활기차고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인구는 어느덧 240명이나 되었지만, 공항은 짓지 않았다. 비행기 소음 때문에 환경이 파괴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태홍은 80세에 핏케언 제도 지킴이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장남 상명이 회장직을 이어받고,

핏케언 섬은 옛날보다 많이 발전했다. 부두도 정비되었고, 대형 선박이 핏케언에 정박하게 되었다.

하지만, 태홍의 나이 113세에 대한민국이 소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에 살던 사람들이 다 죽고 나머지 사람들도 한국을 떠난 탓이었다. 태홍에게는 고소하다라기보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그러게 있을 때 잘 하지. 고집만 부리다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태홍. 도태영은 110세에, 서영석은 108세에 죽고, 핏케언 재건 1,2세대는 거의 죽었다. 이제 태홍만 남았다.

어느덧 118세가 된 태홍. 태홍이 심던 사과나무 두 그루도 어느새 훌쩍 자랐고, 그도 어느덧 병이 들었다.

장남 고상명은 핏케언 지킴이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아 42녀를 두었고,

차남 고세명은 핏케언 대표로 올림픽 탁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차남 고세명은 아버지가 못 다한 꿈을 이룬 것이다.

타히티 여인 사이에서 52녀를 두었다. 태홍의 손자, 손녀들은 한결같이 똑똑하고 착하고 용맹스러웠다.

태홍은 병석해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811, 병이 깊어진 태홍. 병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핏케언 섬에 묻어 다오. 그리고 모두 핏케언 섬의 환경을 잘 지켜 주기 바란다. 상명아, 세명아, 미안하구나.

대한민국이 그리워도 갈 수 없음이 안타깝구나.”

그렇게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한 태홍. 향년 119세였다. 시신은 섬에 묻혔고,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왜냐하면 핏케언 섬이 독립국가로 거듭난 지 50년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탁구선수를 꿈꾸다가,

젊을 때는 동포들에게 천대를 받고, 그것을 견디다 못해 한국을 떠나 이 낯선 섬에서 일생을 보낸 고태홍.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단 하나, 핏케언 제도의 깨끗한 환경이었다. 여생을 핏케언 제도에서 보낸 그이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와 환경을 보호하려는 사랑의 마음은, 전 세계의 가슴 속에 남아 그를 영웅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

, 대한민국은 세계의 기억에서 영원토록 잊혀졌고, 한반도 전체는 수억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채 폐허가 되었다.

왜냐하면, 평소 유아독존을 함부로 하여 지구촌을 등 돌리게 한, 대한민국다운 최후였다. 고태홍의 유산이 그것이었기에,

그것은 지구인들에게 영향을 주어 지구와 우주를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자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유산이었다.

 

- -

'사회의 피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의 피해자 44  (0) 2024.06.09
사회의 피해자 43  (0) 2024.06.09
사회의 피해자 42  (0) 2024.06.09
사회의 피해자 41  (0) 2024.06.09
사회의 피해자 40  (0)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