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8. 14:24ㆍ명선이의 꿈
한국과의 마지막 인연
2005년 12월 31일, 새해를 타국 땅에서 맞는 순간에 카트린 권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한 한국 친구의 이메일이었다.
명선이에게
명선아, 새해도 얼마 안 남았구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어느덧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이야.
이제 너는 축구를 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으니까 너는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야.
네 아빠는 네가 떠난 후 정신병에 걸리셨고, 네 엄마는 맨날 울고 계셔.
네 부모님은 네가 의사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셨었는데,
네가 축구를 통해 출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병이 더욱 악화되셨어.
네 아빠는 매일 술을 드시고 명선이 내놓으라면서 고함을 치고 다니시고,
네 엄마는 아예 식음을 전폐하신 채 자리에 누워 계셔. 네 오빠들은 의사 공부 열심히 하는 중인데,
그 오빠들은 너에 대해 너무 안타까워하더라. 너에게도 네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떠난 것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너무 서운해 하더라. 네 친척 분들도 안타까워하시고.
프랑스에 사는 한국 친구들과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네 행동을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니?
‘부모 인생 망치고 대한민국을 떠난 년이 배짱도 좋다. 저런 년은 한국에 올 필요도 없어!’
이러는 거야. 이제는 한국이 왜 너를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이왕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이민 간 이상,
다신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어. 프랑스에서 그렇게 축구가 좋아 떠나서 귀화했으면, 처음부터 프랑스에 태어났어야지,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부모 인생을 망치는 거니? 너 진짜 개념이 있기는 한 거야? 평생 이대로 주저앉고 말 거야?
만약 평생을 축구선수로 주저앉겠다면 이 이메일을 지워 버려.
그 대신 대한민국은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만 기억하렴. 우리 국민은 이대로 살 거야.
우리가 그렇게 살다 가는 것도 어쩌면 운명이겠지. 너는 이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우리는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이제 우리는 너와 절교야.
잘 살아. 그리고 부디 행복하기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한국에 오지 마.
안녕.
너와의 인연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정리할 한 한국 친구로부터.
카트린 권은 이 이메일을 전자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축구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축구를 하고 나서 돌아와 보니, 장 아저씨와 나딸리 아주머니가 송년 식사를 준비하시는 중이었다.
송년 식사를 맛있게 하는 중에 나딸리 아주머니가 삭제하기 전의 이메일 편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나딸리 아주머니도 컴퓨터에 대해 조금 아시는 듯했다.
“카트린, 이제 네 조국은 프랑스야.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는 너를 위해 살 준비가 되어야 하는 거란다.”
“하지만 아주머니…. 하지만…….”
어깨를 떨며 흐느껴 우는 카트린 권. 그런 카트린 권을 장 아저씨가 안아 주신다.
“카트린, 이제는 모든 것은 끝났다. 새해에는 축구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이왕 프랑스에 살게 된 이상 지난 일은 잊어버리렴.”
“카트린, 한국에서 살 수 없는 너로서는 지금 당장은 슬프겠지만, 세월 가면 다 잊어버리게 되어 있단다.
너는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생각만 하렴.”
카트린 권은,
“정말로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살게요.”
하면서 그 따뜻한 호의에 감사를 드린다. 카트린 권의 새해 소원은 축구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 소원이 변치 않기를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카트린 권의 하숙집에는 새해를 축복하는 바람이 솔솔 불어와 카트린 권의 마음 속 상처를 깨끗이 치유해 준다.
찬바람 부는 생드니의 하숙집에서 카트린 권은 시를 읊는다.
찬바람 부는 이국땅에도
새해를 축복하는 바람이 부는구나.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는
새해를 저주하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데
고향 그리워도 못 가는 이 신세를 어이하리오.
그러나 축구가 좋아 떠난 길이니 후회는 없네.
새해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아무 탈 없이 잘 되기를 하느님께 비는 수밖에.
잠시후, 카트린 권은 또 다른 시를 읊었다.
이국땅에 불어오는 찬바람 매서워
새해의 즐거움도 무색하게 하는구나.
하늘은 검은색 땅도 검은색
예수님의 은총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네.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 속에서
새해 소원을 말하기가 무섭지만
축구가 좋아 들어온 이국땅
평생을 이 땅에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