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이의 꿈 20

2024. 6. 18. 14:49명선이의 꿈

아버지의 죽음

그 이후에도 카트린 권은 나딸리 아주머니와 자주 연락하곤 했다. 결혼 후에도 제롬과 사이좋게 지냈다.

하지만 다음 해, 아버지의 부고를 본 카트린 권은 죄책감에 펑펑 울었다.

자신의 고집이 부친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이 아버지를 죽인 크나큰 죄를 지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그 슬픔은 더 커졌다.

이제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것이었다.

아주머니,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제 탓이에요, 흑흑흑…….”

이 일을 나딸리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안타깝다고 하시며 카트린 권을 꼭 안아주셨다.

죄책감과 슬픔을 참지 못해 나딸리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제롬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버지의 부고장에 담긴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명선이에게

 

여름이다. 너무 더운데 하는 일마다 상처뿐이야.

프랑스에서도 잘 지내니?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소식이 없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너 때문에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자살하신 거야. 물론 너의 마음을 알겠지만,

네 아버지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일이 손에 잡히니? 속이 편하니?

명선아, 네 엄마는 네 아버지가 떠난 후 매일 우시고 식음을 전폐하고 계셔. 그리고 네 오빠들은 의사가 되었어.

큰오빠는 대학 석사 학위를 땄고, 작은오빠는 학사 공부 중이야. 권명선, 너는 축구 때문에 네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갔어.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하려 하니? 네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만, 이것만 기억하렴.

너는 축구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그리고 넌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걸. 너 때문에 네 가정은 파탄되었어.

그리고 프랑스에 살던 또래 교포들에게 들었는데, 네가 축구 때문에 교포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었어.

정말이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된 이상 너는 한국에 올 자격이 없어. 이제는 귀국 따위, 꿈도 꾸지 마.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이대로 살기로 결심했으니까. 너 계속 그렇게 살아. 용서 안 할 테니까.

정말 실망했다.

안녕.

 

조국에서 버림받은 너한테 실망한 한 친구로부터.

 

카트린 명선 권은 이 편지를 읽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조국.

그 슬픔을 표현하려 해도 이제는 눈물도 말랐다. 슬픔을 감춘 채 카트린 권은 또 하나의 시를 읊는다.

 

사랑하는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불효자식 이국 땅 프랑스에서 용서를 빕니다.

한국이 나를 버리고 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저는 프랑스가 좋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내 조국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이 내 마음 누가 알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안녕 안녕히.

저도 열심히 살 것을 두 손 모아 다짐합니다.

 

카트린 권은 그 후 다짐한다. 성공해서 귀국하자고.

제롬과 결혼한 이상 조국에 대한 사랑은 끝났다고.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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