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이의 꿈 21

2024. 6. 18. 15:10명선이의 꿈

명선이가 떠난 그 후의 집안 사정

권명선이 떠난 이후 집안의 사정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된 막내딸의 사진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시며 통곡을 매일같이 했고,

명선이를 데려오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딸을 찾아 달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했으나 듣지 못하자 술에 취해 울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결국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명선이가 떠난 후 매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결국 유방암이 악화되었다.

명선이가 떠난 지 9년 뒤인 2014810, 아버지는 독극물을 마시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권명선을 보거든 한국에 오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 년은 내 딸이 아닙니다. 내 두 아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권명선은 축구에 눈이 멀어 아비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그 년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삼촌과 사촌들, 외가쪽 식구들도 와 있었다. 권명선 카트린은 오지 못했다.

아니, 오지 않았다. 카트린 권은 입국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명선 카트린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카트린 권이 올 리가 없고, 올 수도 없었음을 알면서도.

명선이 걔, 축구한다면서요?”

명선이 작은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래. 그러한 소식이 들렸어. 프랑스에 정착했대. 부모 버리고 떠난 년인데, 올 수 있겠니?”

그렇게 말씀하신다. 야위고 침울한 목소리로. 외삼촌이 하시는 말,

누님 말씀이 옳습니다. 명선이 걔, 혼 좀 나야 해! 제 아버지 죽여 놓고 축구가 그렇게 하고 싶었나!”

그렇게 분노한다. 그 말을 들은 큰아버지가 하시는 말,

그쯤 해 두게. 명선이는 이제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니 응원해 줘야지.”

친척들은 카트린 명선 권에 대한 인연은 끊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이 문상을 오셨다. 선생님은 명선이에 대해,

명선이 그렇게 안 봤는데, 아버지까지 죽일 정도일 줄 몰랐어요. 명선이와 담판을 짓고 말겠어요!”

격분하며 소리친다. 하지만 큰어머니는,

가만 놔두세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세요. 원래 그런 애니까.”

관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워낙 똑똑한 아이였는데 한국에 오지 못한 명선이를 그리워했다.

너무나도 똑똑한 아이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가루가 된 시신은 큰오빠가 강물에 뿌렸다.

작은오빠는 명선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착하고 똑똑한 동생 명선이에게

 

명선아, 네가 프랑스에 이민 간 얘기는 들었어. 너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축구보다는 의사가 되기를 나도 바랐는데, 네가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을 줄 상상도 못 했어.

너 떠난 이후 아버지는 자살하시고, 어머니는 강원도로 가셨어. 네 큰오빠와 나는 의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단.

네 큰오빠는 벌써 의대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난 의대 2학년이야.

어떻게 지내는지 나도 모르겠구나, 넌 너한테 잔소리하시던 아버지가 없으니까 후련하겠지만,

아버지의 소중함을 언젠가 깨달을 때가 올 거야.

프랑스에서 아무리 축구를 잘 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대한 꿈을 나는 끊을 수 없으니까.

잘 살아라.

안녕.

 

너의 영원한 응원자 작은오빠가

 

큰오빠는 이 시를 지으며 명선이를 그리워했다.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운 명선이

너의 귀여운 얼굴 눈에 선한데

너는 머나먼 타국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구나.

사랑하는 조국은 너를 버리지 않았건만

너는 기어이 조국을 버렸구나.

언젠가는 조국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면

돌아온다 해도 반기는 건 자연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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