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8. 08:34ㆍ진수의 꿈
◆한국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재판(2)
그런데, 변호사의 발언이 끝나는 도중 담임선생님이 소리쳤다.
“선처는 무슨 놈의 선처! 당장 사형시켜!”
이 일갈에 또다시 어수선해지는 재판정.
“아가리 닥쳐라, 이 씨발년아!”
“저 썅년이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은가 보구나!”
“저게 무슨 선생이야! 괴물이지!”
“진수 죽이려고 그 따위로 재판하냐!”
“알고 보니 목사 이 새끼도 괴물이구나! 진수를 죽이려 했어!”
“재판장도 알고 보니 괴물이다! 이 재판은 무효다!”
당황한 김영산 재판장. 그러나 침착하게 정숙을 요구한다.
“조용히 하세요! 제발 조용히 하세요!”
재판정은 5분 후 정숙해진다.
“변호사님, 알겠습니다. 다음, 주한 카타르 대사님의 발언 있겠습니다.”
주한 카타르 대사는 이렇게 발언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잔악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가석방 없이 무기징역이라니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신의 벌을 어찌 면하시렵니까? 김진수 군도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카타르의 학생입니다.
이렇게 착한 학생을 여러분은 철저히 짓밟고 계시는군요.
한국에서는 지금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이 이 재판정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참, 진수 군은 나름대로 카타르와 한국을 사랑하고 있으며, 차별을 두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카타르에 귀화하더라도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발언은 이어진다.
“한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착한 한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겁니다. 코란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전 인류를 죽이는 악과 같으며,
한 사람을 구제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전 인류를 구하는 선행이라’고 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김진수 군을 죽이려 함은 전 인류와 전 세계를 해치는 악과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진수 담임선생님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니 김진수 군의 무조건적인 무죄 석방을 요청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목사님이 소리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진수네 가문에 저주 있으라!”
이 말 한마디에 재판정 전체가 소란스러워진다.
“진수는 착한 아이야! 유능한 축구선수라고!”
“목사 이 괴물!”
“선생년도 괴물이네! 저게 무슨 선생이야!”
“재판장은 진수를 석방하라!”
“재판장도 괴물이다! 이 재판 취소하라!”
재판장도 당황한 표정이다. 하지만 침착하게 정숙을 요구한다.
“조용히 해 주세요! 정숙하세요!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조용히 하세요!”
조용해지는 재판정. 그 다음 이어지는 재판장의 설교.
“대사님, 예, 알았어요. 김진수, 검사님께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원하고 계시거든.
하지만 변호사님께서는 네가 석방되는 것을 원하시고…….
진수는 축구가 하고 싶고, 그러다가 한국에서 미움 받고 욕먹고…….”
재판장의 권유는 간절하고도 노골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거야?”
진수는 속으로 분노를 삭인다. 아무 대답이 없는 진수에게 단호한 김영산 재판장의 마지막 권면.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새 삶을 살고, 국민께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열 번 말해봐, 어서!”
아무 대답이 없는 진수. 그런 그를 다그치는 판사님.
“남자답게, 용기 있게, 축구 따위 하지 않겠다고 빌어! 빌란 말이야! 잘못했습니다 그래! 왜 못 해? 대답 안 해? 빨리!”
선택의 갈림길, 카타르에서 나라를 잃고 행복하게 사느냐,
한국에서 노예처럼 불행하게 사느냐 둘 중 하나의 갈림길에서 진수는 한참 있다가 결단하듯 말한다.
“……싫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정적이 흐르는 재판정. 그리고 한숨을 쉬는 김영산 재판장. 얼마 후 재판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판결을 선고합니다. 피고 김진수, 사형 및 벌금 8천만 원에 처한다! 진수 너는 카타르로 떠나게 되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다신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도 하지 마라!”
진수 어머니는 체념에 찬 표정으로,
“보석금 여기 있어요, 이제 되었나요?”
하지만 판사는,
“보석금의 문제가 아니라 진수 부모님께서 진수를 키우는 방법이 틀려서 그래요. 보석금은 받고 석방하겠지만,
진짜 진수 이러면 다시는 한국에 못 돌아와요. 이역만리 타향에서 평생 그렇게 살 겁니까?
그렇게 사시면 평생 좋은 소리 못 들어요! 평생 이따위로 키워 가지고 무슨 부모예요! 그렇게 사시면 안 돼요!
그따위로 키워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
주한 카타르 대사가 끼어든다.
“당신은 판사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겠군요. 진수 군을 죽이려 하다니.”
진수는 울면서 재판정을 나선다.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조국에 대한 미련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얼마 후 진수는 무슨 전화를 받는데, 들으나 마나 협박전화였다.
“진수야! 당장 내 합의금 3백만 원 내놓아라! 안 내놓으면 너 카타르에서 한 짓 다 공개해 버릴 거야!”
그 후로도 이민 준비를 하는 동안 주위 가족들에게 협박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이메일로도 마찬가지였다.
진수가 이용하는 이메일에는 협박 메일이 많이 몰려왔다. 이 중 하나의 메일을 열어봤더니 다음과 같았다.
돈 백만 원 가지고 폐가로 와라! 안 그러면 네 집 확 불질러버린다!
또 다른 이메일이 왔다. 열어 봤더니,
진수야! 사랑해~ 너 이민 간다며? 나 네가 이민 간다는 소식 듣고 안타까웠어. 너 이민 가면 예수 안 믿을 거잖아?
너 당장 국민께 잘못했다고 빌고 헌금 8억 원 가져오고, 축구 대신 성경을 매일매일 읽는 것도 잊지 마!
우리 교회에 가서 한번 다시 시작하자! 만일 진수가 우리 교회 안 오면 우리 마음 너무너무 아파~
네 비밀 모두에게 다 폭로해 버리기 전에 꼭! 교회에 가자! 파이팅! 파이팅! 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파이팅!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그 속에 은혜와 성령이 있어.
너도 하나님께 축복받을 수 있어. 축구 그만두고 성경을 매일 읽는 큰 용기를 내보자. 부탁해.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남자답게,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하자. 응? 응? 아앙~ 너 하나님 포기할 거야? 너 대한민국 포기할 거야?
만약 이 이메일을 지우는 순간 너는 성령훼방죄를 짓는 거야! 너 교회 안 오면 혼난다!
예배 안 드리면 너의 가문에 무서운 저주와 벌이 내릴 거야~ 가족들 데리고 꼭 교회로 와! 파이팅! 사랑해, 진수야~
추신: 대한민국을 포기한다는 건 하나님을 포기하는 거야. 꼭 교회로 와~ 알았지? 사랑해~
절망한 진수는 이 이메일들을 지워버리고, 이민에 필요한 짐을 싸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지 오래 전이야. 정치인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야.
나는 더 이상 서민들 뒤치다꺼리 따위는 죽어도 하기 싫어.’
이제 내일이면 이별의 기자회견을 해야 하고, 글피 - 3일 후에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