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탁구선수의 슬픈 이야기 5(마지막회)

2024. 12. 14. 07:43소설 모음

통일 한국에서

통일 한국에서 그는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장영수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더 많아

장영수는 그 후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주는 훈장을 받았다. 훈장 수여식에서는 장영수의 부모님이 와 계셨다.

영수 아버지께서는,

"참 잘 되었구나. 이제야 성공했구나. 잘 했다. 앞으로도 잘 살아라."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래, 이 사람이 네 색시냐?"

"."

"정말 예쁘구나.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얘가 네 아들이냐?"

"제 아들입니다. 정욱(貞昱)이라고 지었습니다."

"좋은 이름이구나. 애비는 이제 늙었다. 애비는 네가 법관이 되기를 바랐는데. 이제 소원대로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라."

그 후 통일 한국에서 방직회사 경영을 하며 여생을 보낸 영암(榮巖) 장영수.

일본인 마쓰야마 쥰은 그 후 평원군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에도 사업을 확장한다.

하지만 장영수는 착실하게 기업을 이끌면서 '부실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아예 얻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서전 여명과 꿈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탁구를 하고 싶어 일본으로 갔지만, 나는 조금만 더 노력해서 탁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착실한 성격이라서,

공부를 하라고 했을 때 시키는 대로 했다. 통일 전 한국에서는 취직 이외의 길을 찾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통일 한국에서는 취직 없이도 꿈을 이룰 수 있어 행복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영암 장영수도 노인이 되었다. 60세에 부친을, 67세에 모친을 여읜 그는 몸도 마음도 쇠약한 상태였다.

둘째 손주가 탁구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참 잘 되었구나."

하며, 회상에 젖었다. 그 후 영암 장영수는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영암탁구재단을 만든 그는 탁구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셈이 되었다. 소원을 이룬 후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 그대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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