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속에서 벗어나(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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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에서 벗어나 15
가족들과의 상봉2068년 3월 13일, 동암 주현민은 차드에서 가족들과 만났다. 어느새 아내도 나이가 들었고, 장남 고송 주덕무는 26세,차남 현송 주현무는 23세, 3남 가송 주영무는 20세, 4남 노송 주윤무는 18세, 막내딸 주현경은 16세였다.다섯 아이들은 이미 차드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우등생으로 소문나 있었고,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착해서 ‘역시 한국 학생은 다르구나’라는 인식을 모두의 가슴에 심어 주었다.장남 덕무는 카메룬의 의학대학을 졸업해 의사 면허를 따서 차드의 아이들에게 인술(仁術)을 베풀고 있었고,차남 현무는 차드에서 환경보호단체를 만들었으며, 그린피스 회원이었다. 3남 영무는 차드 대학교 2학년인데,환경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다. 4남 윤무는 고등학교 3학년, 막내딸..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4
UN 총회에서 연설하다그 후 주현민은 판문점 UN 총회에서,“쓰레기를 재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인 여러분이 힘을 합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이대로 가면 우리는 괴물이 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악들이 과거에 멸종된 공룡들과 무엇이 다릅니까?세계 인류가 다함께 힘을 합친다면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지구를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지구의 운명은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우리의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쓰레기 재활용과 환경보호, 무분별한 개발 방지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자기 나라만의 이익이 아니라 지구와 모두의 이익을 중시하는 우리 인류가 되었으면 합니다.”이런 발언이 전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지구인들은 ‘환경보호 운동’에..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3
플라스틱 재활용플라스틱 쓰레기는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의 골칫거리였다.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재활용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태평양에 떠오른 ‘쓰레기 섬’ 같은 말은 이제 환경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말이 되었다.또한 지구촌이 자각(自覺)하여 환경보호와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줍기, 금연절주, 재활용 물품 자원화,중고 가전제품과 안 먹을 음식물 아프리카에 보내기, 미생물 플라스틱 제조 등 별의별 환경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이제 지구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싱가포르처럼 벌금을 내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2
리비아의 군주제 부활사누시 가문이 드디어 리비아에 군주제를 부활시켰다. - 이건 아프가니스탄이나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불가리아,루마니아, 세르비아, 이란도 마찬가지였다. - 리비아 군주제의 부활로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는가 했으나,다행히 사누시 왕조는 리비아에 행복과 물을 안겨준 주현민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2061년 11월 3일, 리비아는 군주제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그렇게 해서 자신이 리비아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주현민은 차드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이후 3개월 동안 차드와 리비아를 오고 가면서 환경보호에 힘을 기울였다.차드와 리비아의 변화를 보고 다른 아랍 국가들도 환경보호에 노력하게 되었다.미국도 지나친 낭비를 자제하고 환경보호와 기후난민 보호에도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1
차드에서 리비아로아이들이 차드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어딜 가든 슬기로운 민족임을 자랑할 만도 했다.하지만 주현민은 차드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2052년 3월 3일, 주현민은 아내와 아이들을 차드에 남겨 두고,홀로 리비아로 떠났다. 리비아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옛날에 리비아에 대수로를 만드는 데 노력한 동아건설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때문일 거다.아무튼 리비아에서 큰 환영을 받은 현민은 카다피가 못 다한 리비아 대수로를 만드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한국의 건설회사들과 협력하여 리비아 대수로가 단 5년만에 공사를 완료하였으므로,리비아 정부에서는 동암 주현민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했다.덕분에 리비아와 차드가 다시 국교(國交)를 복원했음은 당연했다...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0
현민의 아이들2042년 1월 14일에는 장남 고송(孤松) 주덕무가 태어났는데, 장래희망이 의사였다. 트리니다드 시절 낳은 아이인데,부친을 닮아 똑똑했고, 태권도도 잘 했다. 하지만 태권도는 재미로 익혔고,34세에 의사가 되어 부친 대신 차드에서 의사로 활약했다. 그 후 김철민의 딸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고,일생을 차드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 덕분에 영유아 사망률을 0%로 낮추었다. 차남 현송(玄松) 주현무가 태어났는데,2045년 10월 1일생이었다.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났는데, 7세에 은자메나에 있는 기독교 유치원에서 글을 배우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계 수리공이 되었다. 그 후 각종 기계와 컴퓨터를 고쳐 주면서 돈을 벌었고,그 돈으로 차드의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었다. 그 착한 마음에 반한 아가씨..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9
결혼, 그리고 차드로2040년 3월 2일, 현민의 나이 29세. 현지 예배당에서 3살 어린 조영숙과 결혼한 후 그 나라에서 4년을 더 머물렀다.그 후 철민 가족과 함께 차드로 떠난 현민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사람들의 아쉬운 배웅 속에서 차드로 떠났다.처음 차드에 입국 이후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혔지만, 차츰 마음을 여는 주민들이 많아졌다.3년 후인 2047년 2월 12일, 주 카메룬 한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식목일 행사를 열었다.다행히 많은 차드 주민들이 참여해 주었고, 무슬림, 크리스천 등이 종교를 초월하여 현민에게 협조를 하는 바람에차드에도 새마을운동이 일어나 차드 호가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아갔다.물론 차드에 새마을운동이 일어난 이유는 통일 한국에서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차드에 새마을 운동이 일..
202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