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선수 김인석(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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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김인석 8
그리운 고향에서그리운 고향에서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며칠을 보낸 인석.어머니는 아들의 공로 덕분에 재건축된 신형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식당은 아파트 상가 건물로 이전했다.식당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시며 저녁 식사를 친구들과 같이 먹었다.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 김미혜가 찾아왔다. 미혜는 인석이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후 처음 사귄 여자친구로,인석은 표현을 못 했지만 좋아하고 있었고, 미혜도 인석이 헬싱키로 떠난 후 인석 어머니와 자주 만났다.하지만 인석은 몰랐다. 어머니는 미혜네 집안과 사돈을 맺은 사이라는 것을. 참, 미혜는 부모님과 같이 왔다.“인석아!”“응? 왜 그래?”“나 너를 좋아해. 우리 결혼하자.”“인석아, 미혜랑 결혼하렴. 이미 결혼하기로 미혜네와 약속을 ..
2024.09.23 -
배구선수 김인석 7
배구선수로 성공하다“우리 인석이가 핀란드에서 돌아온대요.”2024년 9월 30일, 대림동은 이 소식으로 난리가 났다.이제 인석은 한국뿐만 아니라 핀란드나 세계에서 유명한 배구선수였기 때문이었다.“우리 동네에서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나왔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자 동네의 자랑입니다.”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인석이 엄마가 좋아하시겠어. 인석이 아버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런 말을 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한국 남자배구 첫 금메달을 딴 인석이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다.동네에서는 인석을 어떻게 맞을까 하고 떠들썩했다. 인석이 갑자기 귀국하겠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한국에서 보내 온 어머니의 사진을 보자, 갑자기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어진 것이었다.그 사진은 인석의 친구가 찍..
2024.09.22 -
배구선수 김인석 6
올림픽 금메달2024년 7월 26일에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이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은 남자배구 첫 금메달을 노리고 있었다.인석도 대한민국 선수로서 이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인석의 첫 경기는 튀니지였다. 경기 내내 인석은 열심히 했다.리시브, 스파이크, 블로킹, 다이렉트 킬, 서브에이스 등. 인석의 활약이 연거푸 이어졌다.그 와중에도 인석은 선수로서 반칙은 대부분 하지 않았다. 했어도 심판의 정확한 지적에는 잘 따랐으나,석연치 못한 반칙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25점을 올린 동료들과 인석. 결과는 3:0이었다.뒤이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이탈리아 등 세계 강호들을 연거푸 꺾었다. 이 모든 것이 인석의 공이었다.8강전에서 캐나다를, 4강전에서 이탈리아를, 결승에서 강호 프랑..
2024.09.20 -
배구선수 김인석 5
어머니의 식당일한편, 어머니가 일하시는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인석 엄마, 이 김치찌개 왜 이렇게 맛있어요?”“아주머니, 이 라면 맛있는데요!”이런 칭찬의 소문들이 퍼지자 단골이 늘어난 어머니의 식당. 주 메뉴는 김치찌개, 제육볶음, 라면 등이었다.특히 라면은 여러 가지 라면을 따로 끓이는 맛이 일품이라 많은 학생들이 좋아했다.각 라면에 맞는 조리법으로 끓여주니 학생들이 좋아할 밖에.라면뿐만 아니라 김치찌개와 제육볶음도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 동네 유명 맛집으로 유명해졌다.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국어 자격증과 요리 경연 대회에도 나가서 상을 탔다.손님들의 칭찬이 늘어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겸손하게도,“저희 집은 옛날부터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아들 ..
2024.09.19 -
배구선수 김인석 4
외국의 기술 습득헬싱키에 있는 동안 공부를 잘 했고, 외국의 기술들을 잇달아 습득하면서인석은 점점 훌륭한 배구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정직하고 올바른 플레이를 한 것이다. 바른 생활을 하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지만,그런 인석에게도 그리운 순간들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다.인석은 가끔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던 적이 많았다.‘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혹시 어디 아프신 거 아닐까?’어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울던 나날들이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배구를 열심히 했다.먼 곳에 계신 어머니가 기뻐하실 순간을 상기하면서. 참, 그 동안 인석은 키가 196cm까지 자랐다.큰 키에 근육질의 몸매, 어머니가 그것을 보시면 기뻐하실 것 같았다..
2024.09.16 -
배구선수 김인석 3
지금 이대로 지낼 수 없으면중학교 1학년 때, 부잣집 아들과 같이 중학교에 다녔는데, 그 친구는 마음씨가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학생이고,그 부모님도 착하신 분들이었다. 그 친구와 그 부모님은 성실하시고 정직하기도 하셨다.아무래도 자수성가형이어서 아들도 본받은 모양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태은(邰隱) 전경문이다.점심시간에 그 친구와의 이야기에서,“인석아, 그렇게 가난한데도 배구하겠다는 이유가 뭐야?”“어머니를 위해서야.”“어머니를 위해서 배구선수가 되고 싶어?”“응.”“너 어머님께 효도하려고 배구하는 거구나?”“응.”“그런 거라면 우리가 도와줄게.”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배구에 전념하게 된 인석.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셨다.그 사이 어머니는 어느 골목에 조그만 식당을 하나 차렸고, 그렇게 크..
2024.09.14 -
배구선수 김인석 2
선생님의 반대초등학교 4학년 때, 결국 선생님이 인석을 호출하셨다. 선생님은 작심을 했나 보다.“김인석, 수업 끝나고 남아.”수업이 끝난 교실. 선생님은 인석에게,“인석아, 선생님이 원하는 건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버릇 해서 취직하는 거야.선생님은 네가 배구에 매달려 학업을 소홀히 하는 것이 싫고 안타까웠어. 응? 응?”“……네.”그래서 살포시 안아주시는 선생님.“인석아,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남들처럼 똑같은 길을 가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가서 취직하는,그런 모습이 보고 싶어. 어머니 장애시니까, 취직해서 정상생활 해버릇 하는……. 제발……. 응?”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인석이도 하기를 바랐지만, 인석은 배구를 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런 것도 허용되..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