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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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이의 성공기 1
소설진석이의 성공기堂井 김장수 내 이름은 강진석. 1989년생이다. 호는 문헌(文軒)이다. 나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어느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출퇴근할 때 남들은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나는 대중교통 체질이어서 근처 별내역에서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그럴 때마다 처남이 자동차를 몰고 별내역까지 바래다 주고, 퇴근할 때는 처남이 마중을 나온다.옛날에는 퇴계원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서울에 갔었는데, 그 때는 내가 어렸을 적 얘기였고,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지금 난 삼광 슈퍼스타즈에서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선수로 활약하며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있다.나는 지금 부모님과 3남매를 둔 아내, 장인어른, 장모님, 여동생과 처남, 그리고 조카 둘과 살고 있다.지금 내게 딸린 우리 집 식구들은 자..
2024.11.01 -
어려움의 끝 9(마지막회)
◆에필로그가는 곳마다 강연을 하며 동혁은 보람을 느꼈다.2054년 3월 7일, 62세의 동혁은 미국에서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훈장 시상식에서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동혁.의료진들이 동혁을 응급처치로 치료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삼안(森安) 정동혁. 그는 비록 허망하게 갔지만, 그의 업적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시신은 한국으로 운구된 후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 후 묘비가 세워졌는데,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그 업적은 영원히 남으리라.’
2024.10.31 -
어려움의 끝 8
◆어느덧 두 아들 출생, 그리고 노벨상2027년 2월 19일에는 장남 정성연이, 2029년 5월 1일에는 차남 정흥연이 태어났다.장남 정성연은 커서 미국 예일대학 교수가 되었고, 차남 정흥연은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되었다.두 아들은 각각 컴퓨터와 기계공학에 재능이 있었다. 미국 대학을 졸업하여 과학 연구를 하더니,아버지의 연구를 널리 알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어느덧 동혁은 두 아들의 재능에 감탄하여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얼마 후 2030년 10월에 동혁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컴퓨터비전과 머신러닝으로 연구를 거듭한 결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2054년에 동혁은 드디어 통일된 한국에 돌아왔다. 통일 한국은 철저히 발전되어 있어 가는 곳마다 동혁 가족을 환영했다.자신이 살던 서울..
2024.10.31 -
어려움의 끝 7
◆동혁의 연구 분야동혁의 연구 분야는 컴퓨터비전과 머신러닝이었다. 컴퓨터비전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로카메라, 스캐너 등의 시각(vision) 매체를 통해 입력한 영상을 컴퓨터가 인지하고 분석하게 하는 연구였다.무인자동차나 로봇에 눈의 기능을 탑재하고 컴퓨터가 본 영상 속에서 보행자를 감지하고신호등이나 표지판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실용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또 일반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한 영상을 3D 모션으로 캡처해서 변환시키는 기술도 상용화 단계로 연구하고 있었다.그 뒤 동혁은 박사 과정 후 연구 과정을 끝내면 미국의 IT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했다.기계가 인간의 일반적인 상식 수준까지 학습할 수 있는 핵심 엔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예를 들어, 탁자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
2024.10.27 -
어려움의 끝 6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결혼박사 과정이 끝날 무렵에 동혁은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많은 이력서를 보냈고,인터뷰도 여러 번 했지만 채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실용 기술이 아닌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근본적으로 연구하는 동혁의 논문 분야가최신 트렌드에 맞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그래서 그는 기업 대신 대학의 박사 후 연구과정을 통해 조금 더 커리어를 쌓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다시 수많은 학교에 지원서를 보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90통 가까이 제출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연락이 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인터뷰를 몇 군데 했지만 최종 합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그러던 중에 학회에서 몇 번 얼굴을 뵈었던 것이 인연의 전부인 동광대..
2024.10.27 -
어려움의 끝 5
◆사회의 일원이 되어KAIST에 있는 동안 해외 학회를 다니면서 기업과 협업한 논문 사례들을 보게 된 동혁은같은 연구라고 해도 대학과 기업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그런 협업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요즈음은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해서 기업이 막강한 자본력과 리소스를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어서기업과 함께 연구하면 더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 동혁. 장형윤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더니,“해외 학회에 가서 자네가 눈여겨본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문의해 보게.”라고 조언하셨다. 그래서 동혁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해외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다.그들을 만나 여러 가지 연구를 한 결과, 2019년에 중국 베이징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지사에서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 정해진 기간은 3개월이었..
2024.10.25 -
어려움의 끝 4
◆KAIST에 입학하다세아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동혁은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학부에서 배우지 못했던 부분들을 더 세부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물론 어릴 적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KAIST에서는 현실적으로 최상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학교인데다가등록금, 군 입대 등 자신에게 큰 부담이었던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서 스스로 지원했다.하지만 KAIST 랩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어서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관심 있는 학과와 연구실을 일일이 조사했다.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탐구를 하면서도실용적인 것과 동떨어지지 않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신호, 영상, 음성, 등의 분야를 연구하는 전기 및 전자공학과의 수암(修菴) 장형윤 교수님 랩 홈페이지에 들어가첫 화..
202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