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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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늘 아래서 4
91. 그 동안 자유 대한민국에서 누려온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청년실업 문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대한민국을 떠난다는 너의 봉사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제발, 떠나라. 박수 칠 때 떠나라. 92. 예수가 너를 쌍수를 들어 환영 할 것이다. 93. 저 씹새끼 하는 짓이 그렇지 뭐~ 94. 제발 빨리 꺼져 주세요. 95. 국적 포기 기자회견을 하셨으니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 가서 잘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 96. 고의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망신을 준 놈인데, 절대 입국 허가 내주지 말라. 97. 그나마 너무 늦지 않게 국민이길 포기해서 다행이다. 마음가짐 그대로 갖고 다른 나라에 빨리 가거라. 너 같은 패배자를 받아줄 나라가 없..
2024.01.03 -
한국의 그늘 아래서 3
61. 자신의 무지를 생각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하다니. 다른 이들은 열심히 해서 상류층까지 간다. 머저리야. 62. 그렇게 자랑스러운 기자회견을 한 사람, 떳떳한 행위이고 자랑스러운 생각들이면 얼굴을 내놓고 해야지 않을까? 하기는 얼굴을 가릴 놈이 아니지. 63. 이치적으로 맞지 않는 행위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임을 언제쯤 깨달을까? 대한민국 국적을 얻기 바라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제발 국적을 어서 바꿔줘라. 억지로 여기서 살지 말고. 64. 아무리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싫으면 가세요! 당신이 그토록 외치는 유토피아로! 65. 그러면서 한국 싫다고 하면서 케냐 시민권 얻으려고 하고, 잘 하는 짓이다...
2024.01.02 -
한국의 그늘 아래서 2
31. 우리도 너 필요 없다. 32. 웃기지도 않는군요. 대한민국 국민이길 거부하려면 국적포기를 해야지 국민 망신 주는 기자회견으로 끝나다니? 33. 입에서 한 번 나온 말은 취소할 수 없잖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 당장 국적포기 해라. 그래야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까. 34. 이런 사람이 우리 국민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치는 중이다. 35. 그 분에게 국적포기 각서도 같이 쓰고 국민으로서 받는 모든 혜택도 포기하는 각서도 받아야 한다. 36. 전국의 모든 건물에 저놈의 사진을 부착해서 절대 입국 불허하세요. 본인이 스스로 국민이기를 포기했는데 보호해 줄 이유가 없지요. 37. 허기야 헛소리꾼인데 또 무슨 허접한 이유를 들이 대려는지…. 공무원 공채시험장에도 꼭 부착하..
2023.12.23 -
한국의 그늘 아래서 1
소설 한국의 그늘 아래서 堂井 김장수 윤정식. 그는 평범한 한국 소년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왕따를 겪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잘난 척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잘난 척을 한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갖은 왕따는 줄곧 겪어 보았다. 그 예를 들자면, 1. 여자 아이들 앞에서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갑자기 윤정식의 바지를 급하게 내렸다. 그 바람에 성기가 노출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2. 윤정식의 책상에 온갖 낙서가 쓰여 있었다. ‘저~주’, ‘개새끼’, ‘꺼져라’, ‘죽어라’, ‘미친 새끼’, ‘OOO동 OOO호 폭파’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뿐이었다. 3. 어떤 친구가 윤정식한테, “네가 이렇게 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아. 세상 나가 봐.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2023.12.21 -
어느 수영선수의 고백 4(마지막회)
세월이 흘러 얼마 후, 세민이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것도 최연소로. 그 날에, 세 집안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30여 년 전 자신이 금메달을 땄던 것처럼 자식도 금메달을 딴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금메달을 따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자신이었으나, 세민이는 매사에 신중한 아이였는지라, 당연한 금메달이었다. 세민이는 금메달을 딸 자격이 있다.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수영계에서 버림받은 나 자신이 못 누린 기쁨을 아들이 누려서 시상대에 오를 때 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세민이가 금메달을 딴 후에도 내 일상은 변화가 없었다. 틈만 나면 나와 내 친구들이 한 일은, 해변가에 밀려온 쓰레기 줍기, 농지 개척, 시 쓰기, 소설 쓰기, 축구 보기 등이다. 앞으..
2023.12.21 -
어느 수영선수의 고백 3
처음 무인도에 왔을 때, 조금은 무서웠다. 낡은 집과 풀숲이 무성한 길, 전기가 끊긴 상태인지라, 너무 무서웠다. 하는 수 없이 마을 회관에 거처를 정하고 낡은 집을 수리하기 시작하는 일부터, 풀을 뽑아 길을 내는 일, 가축을 사다가 키우는 일 등이 우리 부부가 무인도에 와서 처음 한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든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어렵게 시에서 그 딱한 사정을 알고 – 그것도 누나들에게 – 태양광 발전기, 풍력 발전기, 친환경 에너지 재활용 시설, 새 집(2층집), 새 길, 농지 확보, 무인도 거주민 보호 조치, LED 조명 설치, 전기선 수리, 울타리 수리, 인터넷 개통, 전화 개통 등 시에서 무료로 해 주었다. 우리 부부도 해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로 울타리를..
2023.12.19 -
어느 수영선수의 고백 2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컸다. 아버님은 중소기업에 다니셨고, 어머님은 행상을 하고 다니시며 3남매를 키우셨다. 3남매 중 외아들이었던 나는 어릴 적부터 헤엄을 잘 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영을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코치 선생님께서는 나를 많이 아끼셨고,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최연소로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였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금메달을 땄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고생을 덜어드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아버님께서는 “정말 잘 되었구나.”하고 다행이라 하셨다. 어머님은 식당에 취직하시면서도 나를 뒷바라지해 주셨다. 지금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8~90대 정도는 되셨을 텐데, 지금은 수영으로 효도하고 싶어했던 내 ..
20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