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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에서 벗어나 17
마지막 효도그리운 고향 산천의 품에 안겨 어릴 적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민은 많은 생각을 했다.남북이 힘을 합쳐 잘 살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버렸다는 소식과,신 중국연방이 중국을 대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편,“그래, 이 아이들이 네 아이들이냐?”“예. 첫째와 둘째와 셋째는 공부 때문에 못 왔습니다. 이 가족사진이라도 보십시오.”“어디 보자.”그 가족사진을 본 할머니와 아버지는,“참 잘생겼구나. 같이 왔다면 좋았을걸.”“차드에서 어떻게 지냈느냐? 거기는 사막화가 심각하다던데….”“나무를 적당히 심고, 오아시스에서 물을 길어오니, 아무 걱정 없습니다.”“차드는 참 먼 나라구나.”“우리 손주가 고생하는구나. 할미는 늘 네가 보고 싶었단다.”“이삼년 후에는 꼭 돌..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6
한국에서는“주현민 선생이 차드에서 돌아온대요.”이 말에 화곡동이 발칵 뒤집히는 건 예사였고,“서울 화곡동에서 이런 인재가 배출되었다는 건 우리 동네의 영광이자 자랑입니다.”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현민이 오면 명예 석사 학위와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하였고,대통령이 훈장을 주겠다고 준비 중이었다. 몇 시간 후 주현민 가족이 서울국제공항에 도착하자,과학자들과 기자들이 마중을 나왔다.“주현민 선생님, 잘 돌아오셨습니다!”“차드에서 일하시면서 힘든 건 없으십니까?”그 말에 주현민은,“나는 차드 국민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그냥 차드 국민들이 우리나라 국민처럼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그 말을 하고 나서 공항을 빠져나오자, 서울..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5
가족들과의 상봉2068년 3월 13일, 동암 주현민은 차드에서 가족들과 만났다. 어느새 아내도 나이가 들었고, 장남 고송 주덕무는 26세,차남 현송 주현무는 23세, 3남 가송 주영무는 20세, 4남 노송 주윤무는 18세, 막내딸 주현경은 16세였다.다섯 아이들은 이미 차드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우등생으로 소문나 있었고,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착해서 ‘역시 한국 학생은 다르구나’라는 인식을 모두의 가슴에 심어 주었다.장남 덕무는 카메룬의 의학대학을 졸업해 의사 면허를 따서 차드의 아이들에게 인술(仁術)을 베풀고 있었고,차남 현무는 차드에서 환경보호단체를 만들었으며, 그린피스 회원이었다. 3남 영무는 차드 대학교 2학년인데,환경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다. 4남 윤무는 고등학교 3학년, 막내딸..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4
UN 총회에서 연설하다그 후 주현민은 판문점 UN 총회에서,“쓰레기를 재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인 여러분이 힘을 합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이대로 가면 우리는 괴물이 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악들이 과거에 멸종된 공룡들과 무엇이 다릅니까?세계 인류가 다함께 힘을 합친다면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지구를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지구의 운명은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우리의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쓰레기 재활용과 환경보호, 무분별한 개발 방지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자기 나라만의 이익이 아니라 지구와 모두의 이익을 중시하는 우리 인류가 되었으면 합니다.”이런 발언이 전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지구인들은 ‘환경보호 운동’에..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3
플라스틱 재활용플라스틱 쓰레기는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의 골칫거리였다.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재활용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태평양에 떠오른 ‘쓰레기 섬’ 같은 말은 이제 환경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말이 되었다.또한 지구촌이 자각(自覺)하여 환경보호와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줍기, 금연절주, 재활용 물품 자원화,중고 가전제품과 안 먹을 음식물 아프리카에 보내기, 미생물 플라스틱 제조 등 별의별 환경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이제 지구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싱가포르처럼 벌금을 내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2
리비아의 군주제 부활사누시 가문이 드디어 리비아에 군주제를 부활시켰다. - 이건 아프가니스탄이나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불가리아,루마니아, 세르비아, 이란도 마찬가지였다. - 리비아 군주제의 부활로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는가 했으나,다행히 사누시 왕조는 리비아에 행복과 물을 안겨준 주현민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2061년 11월 3일, 리비아는 군주제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그렇게 해서 자신이 리비아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주현민은 차드에서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이후 3개월 동안 차드와 리비아를 오고 가면서 환경보호에 힘을 기울였다.차드와 리비아의 변화를 보고 다른 아랍 국가들도 환경보호에 노력하게 되었다.미국도 지나친 낭비를 자제하고 환경보호와 기후난민 보호에도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1
차드에서 리비아로아이들이 차드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어딜 가든 슬기로운 민족임을 자랑할 만도 했다.하지만 주현민은 차드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2052년 3월 3일, 주현민은 아내와 아이들을 차드에 남겨 두고,홀로 리비아로 떠났다. 리비아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옛날에 리비아에 대수로를 만드는 데 노력한 동아건설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때문일 거다.아무튼 리비아에서 큰 환영을 받은 현민은 카다피가 못 다한 리비아 대수로를 만드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한국의 건설회사들과 협력하여 리비아 대수로가 단 5년만에 공사를 완료하였으므로,리비아 정부에서는 동암 주현민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했다.덕분에 리비아와 차드가 다시 국교(國交)를 복원했음은 당연했다...
202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