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98)
-
제 버릇 개 못 준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한국인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먼 미래에 살아갈 우리 후손들이우리를 얼마나 욕할지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칩니다.
2024.07.20 -
용서받지 못한 골키퍼 3
월드컵에서 1드디어 그 때가 왔다. 때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당시 한국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노리는 강팀이었다.‘꾀돌이’ 장영태, ‘현대판 일지매’ 권상우 등 당대 최고의 공격진을 구축한 한국은 그 어떤 팀도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정찬식 역시 최강 통일 한국의 축구 선수 자격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다.한국인들은 뛰어난 활약을 보인 정찬식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그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도 골문을 완벽하게 책임지며 통일 한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예선에서 파라과이를 1:0, 알제리를 2:0, 32강에서는 이란을 7:0, 16강에서는 멕시코를 3:1, 8강에서는 벨기에를 4:1,4강에서는 이탈리아를 3:2로 이겼다. 한국인들은 정찬식이 이번 월..
2024.07.20 -
안중근 의사를 만나 뵙고
안중근 의사를 만나 뵙고 堂井 김장수 하얼빈역의 총성 몇 발에 원수는 쓰러지고이윽고 울려퍼진 '카레야 우라'!이 한 마디에 하얼빈역 승강장은 뒤집어지고동양 평화를 이루려고숙명의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난 당신 당신이 이룬 공덕은 천지를 뒤흔드는데동양 평화를 위한 운명의 총성이여 나라를 위한 죽음도 어쩌면 숙명이기에당신의 어깨에 짊어진 동양 평화의 숙명 이제 나도 그 숙명을 이어받아서당신을 능가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2019.2.6. 2019.7.7. 고침
2024.07.19 -
용서받지 못한 골키퍼 2
통일 한국에서의 생활하지만 통일 한국의 초기 생활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정찬식이 북한 주민만 만나면‘남조선 반동’이네 어쩌네 하는 욕설을 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북한 동료들은 그를 만나면,“두고 보갔어. 너이 새끼 행동 조심하라우.”라는 협박을 한 것이 한둘이 아니어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는 결국 입단 3개월 만에 경주로 떠나게 된다.경주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등을 거닐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또한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구단에서 활약을 하여 총 94경기에 출전했다.경주에 있은 지 얼마 후 국가대표로 뽑혔다.
2024.07.19 -
용서받지 못한 골키퍼 1
소설용서받지 못한 골키퍼堂井 김장수 기대를 한 몸에 받다한국 팀 최고의 골키퍼였던 정찬식.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떨쳤지만 월드컵에서 실패자로 - 무슨 이유인지 - 낙인찍혀 자신의 축구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2000년 3월 23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태어났다.비록 가난한 산동네지만 정이 있었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다.176cm의 작은 신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점프력이 뛰어나 아무도 그의 플레이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서울의 축구단에 스카우트된 후에는 승승장구했다. 어떤 때에는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우승, 동아시안컵 우승,아시안게임 우승, U23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하기..
2024.07.18 -
혼자 남게 된 어느 소년의 고독 10(마지막회)
◆독일에서 쓰러지다독일에 돌아간 경수는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한편으로는 음악대학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건강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경수의 나이 79세 때,쉽게 낫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 집안사람들과 가족들이 경수를 돌보며 병수발을 했지만, 어느 병원에서 진찰해 보니,췌장암 3기란다. 이미 완치되기에는 너무 늦은 경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긴다.“이제 고국에 나를 데려다 다오. 다들 훌륭하게 커야 한다. 비록 부모님과 누님 곁으로 가지만,너희들은 형제간에 싸우면 안 된다. 알겠지?”이 말을 남긴 지 얼마 안 되어, 심근경색이 악화되었다. 수술실로 옮겨 수술을 했지만, 얼마 후 가족들은 비보를 듣는다.“선생님, 우리 아버님 어떻던가요?”“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
2024.07.17 -
혼자 남게 된 어느 소년의 고독 9
◆고국에 돌아가다어느덧 경상북도 영양이 그리워진 경수. 서둘러 귀향해 보니, 조부모님은 돌아가시고,고모와 고모부 내외분이 살고 계셨다. 고종 사촌들도 경수 가족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고모와 고모부는 이미 늙으셨고,외삼촌과 외숙모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었다. 대신 외사촌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으며,친구들 또한 늙었지만 모두 다 경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친구들 중에는 40대~70대에 결혼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아들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는 풍조가 유행이었지만 남달리 경수는 일찍 결혼했고, 자식은 무려 5남매였다.영양에서는 귀국한 경수를 위한 잔치와 행사가 줄을 이었다.인구는 비록 조금 줄었어도 자신을 맞아주는 그리운 제2의 고향 풍경이었다.꿈같은 영양에서의 날들을 마무리하며 고향인 의정부시로 가보니, ..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