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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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의 끝 3
◆중고등학교 시절중학교 때의 동혁은 39명 중에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그 무렵은 학교 업무를 최신으로 전산화하던 시기였는데 ‘컴퓨터 도우미’라는 직책으로전산실에서 선생님들 심부름을 하면서 컴퓨터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됐다.인터넷이나 게임보다는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리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보며 재미를 느끼게 됐고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영어 매뉴얼을 가지고 고군분투했던 경험들이지금의 진로를 선택하게 한 밑거름이 되어준 것이었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어머니께서 직장에 다니시느라 동혁을 돌보아 주실 시간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동혁아, 학교 등록금은 엄마가 다 낼 테니까 학교 그만두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렴.”이 말은 동혁이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2024.10.23 -
어려움의 끝 2
◆어린 시절의 기억들1992년 3뤌 4일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에서 태어난 그는 아기(4개월) 때 부친을 여의었다.어린 시절에 IMF를 겪어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양육을 해 주시고,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외갓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그 무렵까지도 한글을 떼지 못하여서 받아쓰기를 늘 틀리고 방과 후에는 나머지 공부를 했다.하지만 어린 동혁은 드라마를 전부터 좋아했다.그 시절에 드라마를 보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은 학교는 다름 아닌 KAIST, 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었다.‘나도 꼭 저런 학교에 다녀야지.’어린 시절의 동혁은 과학자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누구나 과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과학자가 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른 채 그저 부러웠을 따름이었다. 그 ..
2024.10.21 -
어려움의 끝 1
소설어려움의 끝堂井 김장수 ◆프롤로그삼안(森安) 정동혁 박사. 1992년 3월 4일생. 그는 미국 MIT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으로 일하고 있었다.하지만 세월이 흘러서는 대학 교수로 취직하여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연구했다.가끔 조국이 보고 싶을 때는 일기를 씀으로써 그리움을 이겨 나갔다. 아침은 빵과 우유를 먹고, 점심은 초콜릿을,저녁은 아내가 해 주는 스파게티를 먹으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 나간다.하지만 동혁은 그 그리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그 동안 한국은 얼마나 변했을까?’그 그리움은 어쩌면 동혁에게 삶의 힘인지도 모른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 동혁은 생각한다.조국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통일 한국의 좋은 점들을 두루 느끼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연구에 바..
2024.10.20 -
피의 피날레 13
해외여행그후 30년이 흘러 유림(裕林) 장세절은 58세가 되었다.희선이의 슬하에 5남 3녀를 둔 유림 장세절은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일본에서 쇼핑도 하고, 훈장도 받고,라멘도 먹고, 재일 동포도 지원하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고, 회고록도 쓰기 시작했다.그렇게 쓴 회고록의 이름은 《사랑 받고 사랑 주고》였다. 이 회고록에서 장세절은 이렇게 밝혔다.“나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주기 위해 매사에 조심하며 살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정말 기뻤다.마라톤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력과 인내력, 정신력이 없이는 하기 힘든 것이 마라톤이다.난 상관없지만 후배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나는 마라톤 경기를 할 때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그 후 장세..
2024.10.19 -
피의 피날레 12
제자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그 후 장세절은 미국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고, 어느 실업팀의 감독이 되었다. 제자들 중에는 장세절 팬들이 많았는데,그들이 직접 장세절을 만났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덕분에 열심히 훈련에 열중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원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장세절은 직접 상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우리 마라톤 팀을 지원해 주십시오. 되는 만큼만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선수들에게 할 말이 생깁니다.”그래서 가까스로 만족스러운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얼마 후 2028 올림픽이 열렸다.제자 중 이창원(李昌源)의 금메달 획득은 큰 성공이었다.깜짝 놀란 장세절 감독과 실업팀 사장은 훈련비를 올려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이행되었다.그 후 ..
2024.10.18 -
피의 피날레 11
훈장 수여, 그리고 감독 취임장세절은 귀국 후 체육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훈장과 금메달을 부모님과 할머니께 보여 드리면서,“이제 효도할게요. 정말이지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정말 고맙다, 세절아! 네가 우리들을 기쁘게 하는구나!”“걱정마라. 이 할미가 맛있는 거 해줄게. 기다려. 알았지?”“네 할아버지께서 이걸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야.”고향집에서 큰 환영을 받은 장세절은 마을에서도 큰 환영과 박수를 받았다.“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큰 경사네.”“세절이가 우리 마을을 빛내 주었어요.”“세절이가 해낼 줄 알았어!”곧바로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세절이네 가족들도 모두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희선이는 결혼반지를 세절이한테 받았고, 그 자리에서 세절이에게,“우리, ..
2024.10.18 -
피의 피날레 10
영광의 금메달장세절은 2024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 참가하여 열심히 뛰었다.일본, 에티오피아, 케냐, 남수단,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세절은,‘포기하지 말자.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은가.’하며 의지를 굳게 다졌다. 이윽고 달리기 준비가 끝나고, 총성이 울렸다.장세절은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는 어느 위인의 말을 간직하며 천천히 달렸으며,중간 중간에 물을 머리에 끼얹기도 하며 쉬지 않고 달렸다. 앞쪽의 선수가 지치는 기색이 역력하자,장세절은 힘을 내어 마침내 앞쪽의 선수와 맨 앞에 달리던 선수를 가까스로 제쳤다.그리고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선 장세절은 조국을 생각하며 열심히, 그리고 빨리 뛰었다.그렇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장세절은 시상대 앞에서 애국가를 ..
202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