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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11
그 후 30년 세월은 흘러 30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3남매는 사이좋게 지냈다. 큰누나 성현경 씨는 경기도 연천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했는데, 손맛이 좋고 재료가 신선하다는 소문이 파다해 단골이 늘었다. 그 후 조카딸이 이 사업을 이어받아 이 식당은 유명한 식당을 뛰어넘어 평양, 청진, 함흥, 서울, 파주, 개성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에까지 진출하여 굴지의 식당이 되었다. 특히 라면을 잘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체인점도 운영하게 되었다. 작은누나 성현미 씨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 학교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고, 나중에는 근정훈장까지 받았다. 조카는 훗날 신의주대학교의 대학총장이 되었다. 동욱 씨는 아들 셋에 딸 둘을 두었는데, 하나같이 효성스럽고 착..
2024.04.15 -
삼척에 다녀와서
동생 차를 타고 삼척에 다녀왔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서 버스를 타고 걸어왔다.
2024.04.14 -
고독사 10
잠시나마 행복했다 성동욱 씨 부부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경기 군포시를 찾은 2월 6일에는 눈이 내렸다. 성 씨 부부는 다음 달인 2월 3일까지 군포에서 머물며 어머니의 흔적을 정리하고 떠났다. “잠깐밖에 얘기를 못 나눴지만, 아들 부부가 참하고 착합디다. 딸들과 사위들도 참 착해요. 평생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고…. 어머니를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어요.” 근처 슈퍼마켓 주인의 말이다. 아들 동욱 씨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에 언론과 직접 접촉하길 꺼렸다.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부인이 대신 이야기를 전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전화를 받고 남편이 한동안 힘들어했어요. 아무래도 저희는 다른 가족과는 다른 상황이었으니까요. 다른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죠..
2024.04.12 -
고독사 8
이웃들의 동정 “현영 씨는 남편이 죽은 건 아예 몰랐어. 언제나 삼남매 보고 싶다고 했지. 애들이 안 보고 싶어 해서 찾아갈 수 없다고 했어. 고모랑 친척들이 애들 거둬서 잘 키워주고 있다고만 믿었어. 고 씨는 상봉 전까지 그렇게 알았었어.” 이웃주민의 말이었다. 3남매와 어머니가 만났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동네잔치를 열었다. 그와 동시에 3남매는 어머니가 자신들을 그리워했다는 진심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왜 좀 더 빨리 알아드리지 못했는가 하고 말이다.
2024.04.10 -
고독사 9
어머니의 행복한 임종 하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 더 빨리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울 노릇이다. 어머니가 남긴 유언. “얘들아, 이제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다 주님 덕분이다. 죽어서도 어른께 효도하고 아이들에게도 효도를 가르쳐 주어라.” 이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2022년 1월 24일의 일이었다. 아무리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라지만, 삼남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토록 간절했던 소원을 이루고 천국으로 떠난 것이다. 참으로, 동욱 어머니는 참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행복하게 자식들 품에서 돌아가신 것 아니겠는가. 2022년 2월 2일. 동욱 씨 부부..
2024.04.10 -
고독사 7
고아원에 간 3남매 한편, 고 씨가 집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욱 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중독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후 숨을 거두었다. 시누이가 고 씨에게 전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 고 씨는 그 사실을 아이들을 만나서야 알았다. - 누나들과 동욱 씨는 친척들 손에 자라거나 도움을 받은 적이 일절 없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뒤에 고아원에 버려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했고, 친척들과는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가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듣지 못했다. 어떻게 같은 핏줄끼리 이럴 수 있는지, 가족들이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참 잔인하다. 그런데도 3남매는 사이좋게 지내면서 3남매 모두 공부를 잘 했다. 동욱 씨는 과학 논문을 써서 낸 후 최..
2024.04.06 -
고독사 6
어머니와 아이들 2021년 4월 4일. 빗줄기는 강한 바람을 타고 조금씩 굵어졌고, 차량 와이퍼는 바쁘게 돌아갔다. 성동욱 씨와 부인은 경남 창원시에서 5시간 반을 달려 군포시에 도착했다. 다세대주택 101호 앞 화단에는 비를 머금은 초록 잎사귀들이 있었다. 주민 할아버지는, “고 씨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식물들이다.” 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욱 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전화를 받은 이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지만 한번 만나 뵙는 게 괜찮을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부인과 상의 끝에 어머니가 사는 집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는 큰누나와 작은누나가 매형들과 함께 어머니를 만나러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후 삼남매는 어머니와 상봉했다.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얼마 후..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