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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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의 권투인생 7(마지막회)
경일은 은퇴 후 자선단체를 하나 만든다. 2043년 6월 1일, ‘남아프리카 송재 장경일 자선기금’이 설립된다. 이 단체는 남아공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학업의 기회를 주고,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운동도 가르친다. 2044년 6월 12일, 네덜란드인과 결혼한 경일은 2045년 9월 3일에 외아들 승준이를 낳았다. ‘남아프리카 송재 장경일 자선기금’은 남아공에 본부를 두고 콩고민주공화국,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보츠와나, 쿠바, 시리아, 리비아 등에도 퍼져 나갔다. 다만 한국에는 지부를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조국을 배신한 놈이 만든 재단 따위는 필요 없으니 너 갈 길을 가라는 식이었다. 실망한 송재 장경일은 한국에는 절대 지부를 세우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다...
2024.03.25 -
경일의 권투인생 6
2042년, 경일의 나이 어느덧 38세. 여태까지도 경일의 기량은 지독하리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 챔피언 김상규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을 때. 김상규가 하는 말, “장경일, 너는 조국을 배반하고 부자가 되었어. 그렇게 살고도 제대로 살 것 같아?” “김상규, 너는 그래도 행복한 거야. 너는 사랑할 조국이 있잖아.” “그래? 알았어.” “나는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야.” “좋아. 내 주먹으로 깨우쳐 주지. 너에게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말이지!” 김상규가 주먹을 날리자마자, 장경일은 오른쪽으로 피해 왼 주먹으로 김상규의 턱을 올려쳤고, 김상규가 당황하자 때를 놓치지 않고 오른 주먹으로 김상규의 뺨을 후려쳤다. 단 몇 초 만에 김상규가 쓰러지자, 관중들은 당황했다. 10초가 지나도 김상규는 일어..
2024.03.21 -
경일의 권투인생 5
경일은 링 안에서는 화려한 복싱으로 팬들을 열광케 했고, 링 밖에서는 거침없는 독설과 사회활동으로 언론에 본인의 이름을 도배했다. 물론 남아공에서 전쟁 반대와 봉사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궐석재판에서 금메달 박탈 선고문이 날아왔고, 한국 교포들은 장경일을 사형시켜 달라고 서명운동을 펼치기까지 했다. 2037년 5월 5일에는 경일은 순자산 822억 달러의 거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경일의 재산을 몰수하여 불우이웃 돕기에 쓰자!” 라는 여론이 나와 경일은 철저히 동포들에게 짓밟힌 시간을 보냈다. 경일은 원치 않는 재판을 받게 되었고, 대법원 연설에서, “나는 소위 말해 튀고 싶어서 안달 났다고 한국인에게서 버림받았고 대한민국에서 없는 행복을 누리고 사는데, 철저히 이기적..
2024.03.19 -
경일의 권투인생 4
어떤 친구는, “장경일, 다른 사람처럼 취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니?” 또 다른 친구는, “그깟 금메달이 뭐가 중요하냐? 취업이 중요하지!” 교회 다니는 어떤 청년은, “너 그렇게 살면 지옥 간다!” 이렇게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교회 권사님은, “경일이도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 평생 그렇게 살 수 없잖니?” 교회 목사님은, “그 시간에 성경도 읽고, 말씀도 듣고, 모든 걸 중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자. 응?”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경일아,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내가 원하는 취업, 남들과 똑같은 길,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자. 도와줄게. 권투 그만두렴. 응? 부탁이야….” 이렇게 말하며 흐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또한 ..
2024.03.18 -
경일의 권투인생 3
한 대학교수가 말하기를, “장경일 군, 이제는 취직이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싸움질에 매달려 살 거야? 그렇게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면 안 되는데….” “저는 권투가 좋아요. 권투야 제가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요?” “내 말 들어! 적당히 해야지. 장경일 군이 취업을 해서 우리 학교가 원하는 인재로 사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었는데, 내가 몇 번 주의를 줬지? 줬어, 안 줬어?” “저는 권투가….” 이 말이 끝나기 전에, “묻는 말에나 대답햇!” 경일은 이 말에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마지못해 한 대답은, “…주었습니다.” “그럼 괜찮은 회사에 취직해서 우리 학교를 빛내야지. 다른 학생들은 경일 군처럼 살지 않고 열심히 취직 준비를 하는데, 경일 군만 그렇게 살고 말 건가? 다른 사람들처럼 취직해서 부모에게 ..
2024.03.16 -
경일의 권투인생 2
링 밖에서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한 송재 장경일. 하지만 그는 링 위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고, 모범적인 권투선수였다. 또한 링 위에서는 세계 챔피언을 석권하며 복싱 무대를 호령했으며, 링 밖에서는 대한민국 안의 인종차별과 전쟁 반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무하마드 알리가 그랬던가? 나도 그를 우상으로 공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옛날처럼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등을 위해서는 나는 싸울 것이다. 죽고 천국에 가는 날에는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하여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인류는 어떠한 조건 안에도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인간은 하느님이 지어주신 최고의 창작품이다.”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 ..
2024.03.15 -
경일의 권투인생 1
경일의 권투인생 堂井 김장수 송재(松齋) 장경일. 탄생일은 2008년 8월 8일. 자는 상기(常紀). 별명은 정권자(正拳子). 직업은 권투선수 겸 시민운동가. 그의 탄생일은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된 날이었다. 그는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송재 장경일의 고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였다. 부친은 길거리 청소부였고, 모친은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장경일을 뒷바라지했다. 당시 장경일이 살던 곳은 재개발지구였다. 이웃들이 서로 어울려 다니며 서로서로 돕는 동네였다. 어느 날, 경일은 부모님에게 권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빠, 엄마, 저 권투 할래요.” “그래라. 대신 친구하고 싸우면 안 된다.” 가난한 집이었기에 부모님은 경일의 권투 생활을 뒷바라지 해 주셨다. 또한 중학교 때에는 복싱부에 들어가 기본 기술과 ..
20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