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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재가 조국을 떠나기까지 2
잘못된 ‘영재’의 길나는 한때 ‘영재’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영재 판정을 받은 2019년,초등학교 3학년 순간부터 몇 년간 쭉 그랬다. 호기심 삼아서 몇 가지 시험을 보았다가 영재가 되었다.부모님은 영재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주변에서는 명문대 진학을 보장받았다고 부러워하셨다.나는 그것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중학교 때까지 ‘영재학급’에서 1주일에 3~4시간씩다른 수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암호를 해석하고, 화학, 물리학, 수학,생리의학에도 실력이 있었다. 복잡한 암호를 풀어내고 수학 문제를 쉽게 풀어낼 때의 그 성취감,그건 학교에서 수학시험을 잘 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하지만 영재 학생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한다는 경로를 따..
2024.12.03 -
어느 영재가 조국을 떠나기까지 1
소설어느 영재가 조국을 떠나기까지堂井 김장수 어느 ‘영재’의 고백내 이름은 효암(曉巖) 이현국. 2010년 11월 2일생. 나는 한때 ‘영재’였으나,지금은 미국에서 귀화하여 노벨상을 받고 한국이라는 저주받아 멸망당할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아주 버린 지 오래다.스무 살에 다니던 대학을 1년 만에 그만두고 미국으로 귀화한 이유는,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영재로 살려면 목숨을 항상 걸어야만 하기 때문이고,교수라는 놈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자기애적 망상에 사로잡혀 가지고 권력에 미쳐서,그런 생활에 질식한 나는 그 따위 과학은 과감히 경멸하고 있다. 교수 중의 어떤 새끼가 그러더라.‘노벨상에 연연할 거면 다시는 한국에서 살지 말라’고 말이다. 또 ‘노벨상이 목표라면 외국에 남아라.그렇지 않다면 고국의 근..
2024.12.03 -
그늘 속에서 벗어나 22(마지막회)
할머니 곁으로세월은 흘러 2094년 3월 4일,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급히 병원으로 가 보니, 심근경색이었다.한때 가슴이 가끔 아플 때,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 가족들을 모아 유언을 남긴다.“돈과 관련 없이 사이좋게 지내라. 돈이 전부는 아니다. 지구의 환경을 잘 부탁한다.”향년 83세. 3월 6일에 세상을 떠난 동암 주현민. 그렇게 착하셨던 할머니 곁으로 가게 되어 후회는 없었다.시신은 차드에 운구되었다. 차드에 있는 은자메나 동쪽 공동묘지에 묻혔다.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함께 지구를 지켜야 한다. 후손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 끝 -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21
팔순을 넘긴 아버지노송 주윤무와 주현경은 그 후 81세의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서울 대학에 입학했고,환경학과에 진학한 윤무는 재활용 기술과 쓰레기 처리 기술을 익히면서 환경보호와 자원개발도 배웠다.대학을 다닐 때 A+ 학점을 놓친 적이 없었다. 현경은 한국 고등학교에 입학하여,상포 오기선의 막내아들 효석 오세영과 연인 사이가 되었고, 넷째 오빠 윤무가 대학에 4년만에 졸업하자,오세영과 결혼식을 올렸다. 부모님인 현민은 이 결혼에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었다. 오기선 부부도 마찬가지였다.평소 기선이의 착한 행동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오기선은 이미 어느 농구단의 감독이 되어 있었다.윤무도 여류 과학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윤무의 결혼 후 3개월 후에 현민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새어머니와 동생들, ..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20
주윤무의 졸업식2069년 2월 12일, 넷째 아들 주윤무의 졸업식이 은자메나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다.이 경사스러운 소식이 부친인 동암 주현민에게 전해졌다. 졸업식에 참석한 현민은,“인제 어떻게 할 거니?”“아버지, 저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그래라. 그러나 빗나간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그렇게 말하고 난 후, 서울 대학과 한국에서 해야 할 행동, 예절 등을 윤무와 현경에게 상세히 가르쳐 주고,공항까지 배웅을 하고 난 후, 81세의 아버지께 국제전화를 했다.“아버지, 저 공항입니다.”“오, 현민이구나! 어쩐 일이냐?”“윤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온다 하고, 현경이도 곧 한국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니까, 제 자식들을 잘 부탁합니다.”“오냐, 걱정 마라. 네 아이들은 무사히 아껴 주고, 공부 열심히..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9
차드로 돌아가다이번에 차드에서 새마을운동을 선도하게 된 현민은 어느새 차드를 푸른 숲이 우거지고, 농업이 발달하고,물이 가득한 나라가 되었는데, 2068년 10월에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다.그 해 12월 10일에 상장과 상금, 금메달을 받았다. 한편, 고국에 있는 할머니는 병석에서,“참 잘 되었구나.”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소에는 건강했던 할머니였으나, 쉽게 낫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할머니의 체력으로는 그 병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집안사람들과 목사님, 아버지가 정성껏 돌봐 드렸으나,2069년 1월 1일 새벽 4시, 결국 103세의 나이로 할머니는 돌아가셨다.이 슬픈 소식이 은자메나에 있는 현민에게도 전해졌다.“할머니께서 돌아가시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말이 끝나기 전에 울음을 터뜨렸..
2024.11.30 -
그늘 속에서 벗어나 18
동네잔치얼마 후 현민은 화곡동 주민들이 주최한 동네잔치에 참석했다. 현민이 가족은 이 잔치를 즐기면서 회포를 풀었다.다음날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환경에 대한 강연이 있었을 때, 현민은,“‘자연은 후손들에게 빌린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자연과 환경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자원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친환경 산업이 한국이 살 길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후세들을 실망시키면 용서하지 않겠다’라고요. 우리는 후손들을 위하여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합니다.하지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철저히,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이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라는 강연을 했을 때 참석했던 모두가 박수를 쳤다. 2068년 3월 31일,현민은 차드에서의 환경보호 공적으로 통일 한..
202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