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피해자(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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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피해자 17
조국이 그리워도2043년 3월 1일, 한국에 새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조국(祖國)인 대한민국이 먼저 태홍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태홍이 조국을 배신한 것이 결코 아닌데도.얼마 후인 3월 24일, 태홍에게 생일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한국에서 고태홍이 고생한다며 배달한 생일 케이크였는데,무궁화 문양이 찍혀 있었고, 케이크뿐만 아니라 생일 선물에 금일봉 10만 원, 축하 편지도 같이 담겨 있었다.편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태홍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외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고,타 국적 소유 중에도 지구를 위해 힘써주시니 대견스럽습니다. 지난번에 당신에게 저질렀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시 한 번 고태홍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
2024.05.21 -
사회의 피해자 16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2042년 3월 23일, 고태홍은 할아버지 85세 생신날 가족들이 있는 핏케언 섬의 교회에 가서할아버지 일생 마지막 생일파티를 열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위암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 아버지는 1976년 12월 31일생, 어머니는 1978년 8월 4일생, 할머니는 1957년 6월 11일생,할아버지는 1957년 3월 23일생, 장남 고상명은 2041년 1월 6일생이었다. - 어느새 중년이 된 태홍. 일에 바빠서 가족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고국의 따돌림과 고국 국민의 갑질과 이지메는 그를 더 슬프게 했다. 이제는 한국을 버린 고태홍.이미 그에게 한국은 잊혀진 나라다. 지금 한국의 형편은 태홍에게는 관심도 없고서로를 짓밟고도 모자라 서로..
2024.05.19 -
사회의 피해자 15
핏케언 섬에서2041년 1월 6일, 41세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고상명(高翔明)이라 지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환경단체에서 전자 우편이 왔다. 핏케언 섬에서 연구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이 메일을 받은 태홍은,‘새로운 기회다. 실은 그 섬에 가 보고 싶었다.’라고 생각했다.2041년 4월 3일, 뉴질랜드 정부와 연락을 하여 핏케언 섬에 도착해 보니, 외지인을 경계하는 버릇은 여전했다.게다가 옛날에 비해 인구가 줄었다. 그래서 우선 헨더슨 섬에 환경기지를 만들어 핏케언 섬과 연락을 취하고,헨더슨 섬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분리수거도 잊지 않았다.물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일본 등이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모아분리..
2024.05.18 -
사회의 피해자 14
미국에 돌아오다결국 34세에 미국 영주권자가 된 태홍. 이름도 폴 타이히로 다카카와로 갈았다.그 후 쓰레기 재활용, 지구 온난화 완화 및 해소, 플라스틱 자원화, 폐비닐 원료화, 폐건전지 정화, 방사능 연구,유독가스 정화 등 여러 가지 논문을 연이어 지으면서 ‘환경 박사’로 불린 태홍. 그는 지금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면서 그 정도밖에 안 되냐. 경제가 어려운데 취직도 감지덕지해야지. 취직 면접 보겠습니다,잘못했습니다라고 용서를 빌면 생각해 보겠다’라는 대답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하고 그 순간부로 대한민국과 인연을 끊었다.‘이왕 한국이 날 버린 이상 미국에서 환경연구나 하며 지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열심히 연구를 했다.물론 공부도 더욱 열심히 했다. 물론 저녁 식사를 하면 라..
2024.05.16 -
사회의 피해자 13
일본 환경 개선, 그러나일본으로 돌아간 태홍은 가족들과 함께 오사카에 우선 정착했다.그 곳에서 환경단체에 가입하여 쓰레기 재활용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우선 후쿠시마에 대한 홍보활동을 하면서 후쿠시마의 참상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방사능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 얼마 후에는 도쿄 대학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하지만 주변의 무관심과 핍박은 태홍을 더욱 지치게 했다. 얼마 후 미국에서 편지가 왔는데,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편지였다. 그 당시 현지 주민들의 핍박과 한국인의 이지메, 친구들의 따돌림,한국인과 일본 국민의 고집과 무관심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았었는데,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길이 막힌 그는 ..
2024.05.15 -
사회의 피해자 12
미국에서 꾸는 꿈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해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어렵게 통과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할 준비를 끝마쳤다.지구 온난화에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고태홍은 자신에게 맞는 학문을 공부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찼다.탁구를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언젠가 졸업하면 핏케언 섬에 가서 환경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했다.해양 쓰레기와 지구 온난화에 관심을 두게 된 그는 쓰레기 재활용, 플라스틱 자원화(資源化), 폐비닐 원료화(原料化),폐건전지 정화기술 등에 관심을 가졌다. 환경 관련 논문도 332개에 달할 정도로 공부와 연구를 거듭했다.얼마 후 29세에는 환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박사 학위 취득에 가족들이 함께했고, 얼마 후에는 미국인과 결혼했다.그 미..
2024.05.14 -
사회의 피해자 11
영구제명 그 이후고태홍은 얼마 후 탁구계에서 은퇴했다. 23세 때의 일이었다. 복학을 하고 25세에 메이지 대학 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했다.그 후로는 라면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고태홍이었기에도쿄 대학에 대학원생 자격으로 입학했다. 그 대학에서 어렵게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며드디어 도쿄 대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때 나이 27세.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디에이고에서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어렵게 만났다.“내 손주, 고생 많았다.”“우리 아들, 고생했어.”자신을 크게 야단 칠 줄 알았던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이런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 후 태홍은 일본 국적으로 미국에 집을 정했다.
2024.05.13